[책마을] '날 것' 아닌 굽는 文化가 인간의 뇌를 진화시켜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작은 식당을 배경으로 한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는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 소설 《바베트의 만찬》에서는 프랑스 천재 요리사 바베트가 18세기 덴마크의 작은 해안 마을을 찾아가 풍성한 저녁상을 차려,서먹해하는 마을사람들에게 행복과 믿음을 심어준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이나 서바이벌 프로그램 '예스 셰프'에서 요리는 인생을 건 자존심 대결이 되기도 한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했던 소박한 작업이 이제 하나의 문화로,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한 지 오래다.

《요리 본능》은 진화인류학자인 리처드 랭엄 하버드대 교수가 요리와 인류의 진화 역사를 파헤친 책이다. 그는 "불을 자유자재로 조절하고 맛에 탐닉한 순간부터 인류의 진화는 격변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지구상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종인 침팬지의 먹이 행동과 생태,원시 생활 양식을 간직하고 사는 오지 부족민의 생활 등 고고학적 증거들을 살핀 결과다.

그는 날카로운 손발톱이 없고,치명적인 독도 없으며,입은 작고 턱은 약한 인간이기에 생식을 했다는 이들의 주장에 반대한다. "외형적 특징은 인간이 육식을 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아니라 채식이든 육식이든 불에 익힌 음식을 먹도록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생물학적 증거"라는 것이다.

그가 생식주의자들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엄격한 생식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적절한 에너지 공급을 보장받지 못했다. 여성들 중 50~60%는 생리가 완전히 중단되거나 주기적으로 불규칙한 상태에 이르렀고, 남성들 또한 성 기능이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불에 익힌 음식과 익히지 않은 음식의 차이는 뇌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먹거리를 불에 익히면 녹말은 젤라틴화되고,단백질인 콜라겐은 젤리 상태로 변해 질긴 섬유질이나 육질이 부드러워진다. 이에 따라 음식을 씹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하루 4시간 절약됐고,소화에 드는 에너지 소모량의 10%를 절약할 수 있었다.

그는 "안전하게 음식을 섭취하게 되면서 사냥 등 다른 활동에 투자할 시간과 에너지가 늘어났다"며 "이 에너지를 뇌에 공급해 지구상 어떤 동물보다 큰 신체 대비 뇌 용량을 자랑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