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보기술(IT) 업계에 애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애플이 아이폰을 내놔 세상을 뒤집었지만 미국 소프트 파워는 애플에 국한되지 않는다. 2000년 전후 IT 시장에서 거품이 빠졌다는 점에선 실리콘밸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거품 붕괴 직전에 출범한 구글이 불사조처럼 살아났고,웹 2.0(개방과 공유)에 힘입어 스타 기업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실리콘밸리 부활의 상징은 페이스북이다. 하버드대 학생 마크 저커버그가 보스턴을 떠나 실리콘밸리로 간 것은 거품은 꺼졌지만 돈과 사람이 있고 벤처 생태계가 살아 있기 때문이었다. 페이스북은 2004년 창업해 단숨에 세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시장을 평정했다. 페이스북은 적극 사용자가 7억5000만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 소셜 플랫폼이다.

따지고 보면 페이스북은 한국 싸이월드로부터도 배웠다. 그러나 싸이월드와 전혀 다른 방식을 채택했다. 웹 2.0을 지향한 것.페이스북은 기술과 플랫폼을 개방해 누구든지 페이스북에 적합한 앱(응용프로그램)을 만들어 올리도록 했다. 그 덕분에 페이스북에서 다양한 서비스가 구현됐고 페이스북은 선발업체인 마이스페이스를 제치고 세계 최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됐다.

페이스북이 플랫폼을 개방하면서 많은 신생기업이 스타로 떴다. 징가가 대표적이다. 징가는 2007년에야 출범했지만 소셜게임이라는 새 장르를 개척하며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 페이스북에서 징가 소셜게임을 이용하는 사람은 2억4000만여명이나 된다. 징가는 한국 온라인게임의 부분유료화 모델(게임은 공짜,가상상품은 유료)을 채택했다.

페이스북보다 2년 늦게 출발한 트위터는 세계 최대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로 부상했다. 트위터의 성공은 실리콘밸리 생태계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트위터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3,4년이 지나도록 이렇다할 수익 모델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들은 채근하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은 2억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했고 돈도 벌고 있다.

비단 실리콘밸리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건강한 에코시스템과 소프트 파워는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2008년 시카고에서 출발한 그루폰은 3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세계적인 소셜커머스 사업자로 등장했다. 그루폰은 지역 서비스 상품을 반값에 거래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돌풍을 일으켰다.

실리콘밸리 최대 '괴물'은 역시 구글이다. 구글은 더 이상 세계 최대 검색 서비스 회사에 머물지 않는다. 모바일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를 개방해 세계 모바일 플랫폼을 장악했다.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폰에서 구글의 각종 서비스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가장 강력한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소셜 서비스 '구글 플러스'를 내놓고 페이스북을 위협하고 있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스타 기업의 공통점은 소프트 파워다. 이들은 하드웨어 강자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등의 소프트웨어 인력은 구글,애플,페이스북으로 옮겨 신화를 만들었다. 세계 최대 컴퓨터 회사인 휴렛팩커드(HP)가 하드웨어를 포기한 것도 소프트웨어에 강점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