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반값 등록금'은 부도덕의 극치다
무상급식,무상의료,무상보육 등 무상 시리즈에 이어 '반값 등록금'이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그 핵심은 교육 수요자에게 등록금 반액을 장학금 형태로 정부가 보조하거나 또는 정부가 대학들에 대한 재정지원을 통해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반값'은 소득과 관계없는 보편적 복지다. 대학교육을 '사회적 기본권'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누구나 원하면 대학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는 그 권리를 이행할 의무가 있는 사회주의로 가자는 것이다.

대학교육을 사회적 기본권으로 만들었다가 망한 예가 핀란드의 복지국가가 아니던가. 방방곡곡 작은 도시에도 몇개씩의 대학을 만들어 매년 수천명의 사람들이 학위를 위해 대학에 몰려들었다. 교육 수준은 하락했고 학력 인플레만 야기했다. 그래서 목수,배관공,기계공 등 진정으로 가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공은 만성적으로 부족한 반면 노동시장에서 전혀 쓸모없는 학사,석사는 넘쳐나고 박사 실업자도 지천이다.

반값이 자유와 책임이라는 소중한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도 심각하게 우려할 일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대학교육은 스스로 택하고 교육 비용은 납세자들에게 전가시키기 때문이다. 점심은 내가 먹고 점심값은 다른 사람이 내거나, 치료는 내가 받고 치료비는 제3자가 내는 경우와 동일하다. 흥미로운 것은 그 결과다.

등록금이 반으로 줄었으니 대학 진학률은 늘어날 것이고,노동시장에는 쓸모없는 고학력 거품과 유용한 기능공의 만성적 부족은 불 보듯 뻔하다. 비용이 싸기 때문에 수요자의 교육선택도 신중하지 못하고,열심히 배우겠다는 부담감도 줄어든다. 대학생 노릇하기가 돈이 들지 않으니까,만년 대학생의 진풍경을 볼 날도 머지않았다.

반값 등록금으로 만세를 부르며 기뻐할 곳은 문 닫아야 마땅한 부실 대학이다. 정부 지원으로 대학의 자구노력은 약해지고 강화되는 것은 정부에 대한 의존심뿐이다. 지원이 늘면 정부 규제와 간섭도 심해지게 마련이다. 더구나 반값 강요는 사학의 국유화를 초래하고 자칫 우리 사회의 근본체제를 뒤흔들게 된다.

정부 지원을 위한 납세자의 부담도 문제다. 자녀 없는 납세자들도 남의 집 자녀 대학교육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고졸자의 세금이 부잣집 자녀의 교육비용 조달을 위해 이용된다. 서울의 최고경영자(CEO)나 부유층 자녀 대학교육을 위해 늙은 농어민의 세금을 동원한다. 소득이 가난한 계층에서 부유층으로 이전되고 있다. 그래서 반값 제도는 부도덕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교육의 질에 비해 등록금이 높다고 항의할 수 있다. 가방끈이 길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어쩔 수 없이 대학을 졸업해야 하는 젊은이들의 처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제3자에게 등록금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

등록금은 정부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 교육시장에서 결정할 일이다. 공부가 좋아 열심히 공부할 빈곤층 학생들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장학금 제도를 통해서 그들을 구제할 수 있다. 그들을 위해 부잣집의 기여 입학도 과감히 허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반값 등록금을 위한 정부 지원보다 훨씬 더 도덕적이다.

정부가 할 일은 각종 규제를 풀고 경쟁을 제한하는 요인을 제거해 대학 간 자유로운 경쟁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경쟁은 다양한 재원을 확보해 낮은 등록금으로 질 좋은 교육을 공급하도록 대학을 유도하는 효과적인 사회적 메커니즘이다. 미국 대학은 승승장구하고 정부 규제가 심한 유럽 대학은 정체해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학생 선발과 수익사업,대학 퇴출이 자유롭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

가난한 대학생들을 위해서나 대학 경쟁력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대학 경쟁 질서이다. 반값 등록금은 문제이지 그 해법이 아니다.

민경국 < 강원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