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4일 오전 7시쯤 출근하자마자 참모들에게 금융감독원을 방문하겠으니 당장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현안 때문에 대통령이 일선 기관을 찾은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태가 단순한 하나의 저축은행 일로 삼기엔 문제의 심각성이 크며,금융감독 체계 전반에 대해 "이대론 놔둬선 안되겠다"는 절박한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김희정 대변인은 전했다.

이 대통령은 "장관이나 위원장을 통해 얘기를 전하고자 했으나(금감원이) 국민 전체에 주는 분노보다 내가 분노를 더 느껴 직접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저축은행 사태에 대해 오랫동안 꾸준히 살펴보고 고민해 왔다"며 "이번 기회에 금감원을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불신 넘어 '분노와 슬픔' 느껴

이 대통령은 이날 금감원 간부 40여명 앞에서 깊은 불신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분노''용서 못하겠다'는 등의 어휘를 반복해 사용하면서 25분간 질타했다. 이 대통령은 "분노에 앞서 슬픔을 느끼고 있다"고까지 했다. 훨씬 이전부터 나쁜 관행과 조직적 비리가 있었다고 지적하며 "신용을 감독하는 기관이 신용이 추락하면 중대한 위기"라고 규정했다. 이어 "문제를 못 찾은 것인지,안 찾은 것인지 알 수 없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금감원을 믿지 못하는 만큼 외부에서 개혁의 '메스'를 대겠다는 뜻도 전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관계 부처와 외부 전문가들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금감원 개혁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불공정한 금융당국 '질책'

이 대통령은 이번 사태가 서민이 주로 이용하는 저축은행에서 불거진 데다 4 · 27 재 · 보선 이후 민심 이반을 막기 위해 친서민 정책에 무게를 두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어서 더욱 심각하게 보고 있다.

국민의 '곳간'을 지켜야 할 금융감독 기관이 오히려 비리 사태에 연루됐다는 데 실망을 넘어 노여움마저 느꼈다는 전언이다.

또 기득권층의 도덕적 해이를 흐지부지 넘어갈 경우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집권 4년차 국정운영의 동력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렸다. 부산지역 의원들이 저축은행에 맡긴 예금 등을 전액 보상하는 내용의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제출하는 등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저축은행 사태가 국정기조인 공정사회에도 정면으로 역행한다며 뼈를 깎는 자성을 촉구했다. "가진 자의 비리는 용서받지 못하며 그런 일에 협조한 공직자가 있다면 용서받아선 안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검찰과 감독 당국에 맡기고 지켜보기보다는 앞으로도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는 의미다.

◆"환골탈태" 자성 목소리

이 대통령은 "직원 모두의 평균 임금을 따지면 9000만원 가까이 된다. 그런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끝나고 나서 경력을 이용해 올바르게 하면 누구보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간의 경륜과 경험을 갖고 대주주가 비리를 저지르는 데 합세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참석자들은 "고개를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이럴 때 바뀌지 않으면 언제 바뀌겠느냐"며 "어쩌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와 각오를 다져 줄 것을 특별히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의 한 국장은 "땅에 떨어진 신뢰를 이번에도 회복하지 못한다면 조직이 존립할 수 없을 것이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며 "환골탈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자성이 내부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홍영식/류시훈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