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상자에 가득 담긴 사과를 극사실적으로 그리는 작가 윤병락씨(42)가 오는 10일부터 25일까지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작품전을 펼친다.

윤씨는 탐스럽게 익은 사과 그림으로 유명한 작가다. 그의 그림은 일반 그림보다 수십배 더 품이 드는 노동집약적 작업인데다 첨단 디지털 시대의 모방 본능을 사과에 투영하는 독창성에 힘입어 국내외 아트페어에 출품하기 무섭게 팔려나가고 있다. 2008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추정가보다 훨씬 높은 6만2700달러에 낙찰됐다.

'행복한 사유가 깃든 풍경'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상자에 담긴 사과를 사진처럼 정교하게 그린 2~5m 크기의 회화를 비롯해 조각,설치 작품 등 30여점이 걸린다.

윤씨는 경북 영천에서 자란 기억과 농사의 소중함을 바탕으로 디지털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모방 욕구에서 예술의 원천을 뽑아낸다. 모방은 진리를 인식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며 나무판자에 사과를 그대로 재현해 내는 것.밝은 색감이 살아 움직이고,그 속에서 '사실적인 질감'이 솟아난다. 이른바 '착각의 미학'이다. 사과상자의 나뭇결이나 못자국,그림자까지 극명하게 재현하고 책,신문,수건,잡지,돼지,북극곰까지 아우르면서 주변 환경과 시간의 흐름을 담아낸다.

복제의 극한 지점에서 사물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아이디어도 전보다 더욱 발전됐다. 과일을 묘사했던 이전의 작품세계와 달리 이번에는 조각,설치 작품에도 극사실주의 기법을 활용했다. 첨단 기술의 발달로 관람객 역시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폭이 넓어졌다는 생각에서다.

"사과 그림을 그린 지는 10년 정도 됐어요. 회화만으로는 모방에 대한 정치 · 경제학적 관점을 재현하는 데 한계가 있더군요. 조각이나 설치 작품으로 눈을 돌려 현실과 이상의 경계면을 확장하고 있어요. 모사는 단순히 현실을 투영한 게 아닙니다. 사각 캔버스의 틀이라는 '기호'를 통해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봐야죠."

그는 "예술은 결국 모방의 새로운 형태를 창출해 내는 드라이브 과정"이라며 "농작물을 생산하는 부모님의 땀방울과 진리에 대한 욕구를 이미지로 옮겨놓고 싶었다"고 말했다. (02)732-35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