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무도 일본을 대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제 자동차가 거리를 점령한 동남아에서도 그렇다. 원조 받는 국가들조차 다를 것이 없다. 나의 과거 특파원 경험으로 말하더라도 그렇다. 일본이 크렘린 광장에서 요란을 떨며 소액의 원조물품 전달식을 하는 것에 1990년대 초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던 많은 러시아인들이 분노하곤 했다. 정직하고 신실하며 이웃을 배려한다는 일본인의 이미지는 종종 정반대의 강력한 증거들에 직면한다. 최근의 일도 그렇다.

지난주 초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재무장관,오카다 가쓰야( 岡田克也) 외무상의 잇단 발언은 듣는 사람을 놀라게 했다. "한국이 환율을 조작한다" "주요20개국(G20)에서 엄중하게 책임을 져야 할 것" 등의 발언은 기어이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등의 지면을 장식하며 주말 G20 재무장관 회담을 앞둔 한국의 입장을 코너로 몰아붙였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나서는 대신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완곡하게 반박하는 성숙한 대처로 논란은 잦아들었지만 일본의 진면목을 보여준 하나의 부끄러운 장면임이 분명하다. 친구를 총알받이로 앞세우고,한강에서 뺨맞고 종로에서 분풀이하는 전형적인 소인배의 모습을 보는 듯하여 작은 분노조차 느끼게 된다. '절구에 얻어맞고 주걱으로 때린다'는 일본 속담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물론 다급한 일본의 속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20년째 잃어버린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경제대국의 체면 위신도 이미 일그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소니의 부진이 삼성전자 탓이며 도요타의 위기가 현대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 아닌가. 일본이 워크맨 같은 창의적 제품을 더이상 내놓지 못하는 것이 한국 때문이며 장기적인 경기침체가 진정 한국 때문이라는 것인지.한 · 일 양국의 경제협력에 대해 말하자면 더욱 그렇다. 일본이 자랑하는 중소기업들이 먹고 사는 것은 오히려 한국 덕분이다. 매년 300억달러가 넘는 한국 측의 엄청난 대일 무역적자는 곧바로 일본 중소기업들의 알토란 같은 흑자를 구성하고 있지 않나. 이런 구조에서 누가 누구를 핑계댄다는 것인지, 한국의 환율조작 때문에 한국으로부터 매년 사상 최대의 무역흑자를 본다는 것인지,소인국 일본의 계산법이 실로 딱하기 짝이 없다.

"내가 아니고 저 친구!"라며 함께 볼을 차던 친구를 이웃집 유리창을 깬 범인으로 고자질하는 것조차 우정을 깨는 것이다. 하물며 치열한 환율전쟁 와중에 "우리가 아니라 저쪽!"이라며 국가 지도자들이 일제히 손가락질하는 것은 실로 자존심조차 팽개친 행동이다. 그런 행동들이 쌓인 끝이 바로 센카쿠에서 중국에 턱없이 얻어맞아도 도와주는 이가 없게 된 저간의 사정이다.

G20 의장 자리를 한국에 빼앗기면서 뒤집어졌다는 일본 재무부가 이런 식으로 딴죽을 걸고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를 회고하더라도 일본은 이미 국가 신뢰의 바닥까지 드러낸 터 아닌가 말이다. 당시 한국에서 집중적으로 달러를 빼내 간 것은 독일도 미국도 영국도 아닌 일본이었다. 막판에 200억달러만 빌려달라는 구제금융 요청을 매몰차게 거절하면서 한국을 나락으로 밀어넣은 것이나,당시 치열했던 국제통화기금(IMF) 협상 과정에서 한국에 '수입선 다변화정책을 폐기하라'며 호랑이 위세를 앞세운 여우처럼 행동했던 것도 일본이었다. 동냥은커녕 쪽박마저 깨자는 가증스런 전략이었다.

이런 행동들을 비판하자면 일본 전국 시대의 고사성어가 총동원돼야 할 정도다. 급기야 총리대신까지 나서 한국이 환율을 조작하기 때문에 우리도 불가피하게 2조엔을 환율 조작에 쏟아부었다는 식으로 이웃을 지목하여 밀고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은 어쩌다 이렇게 스스로 소인배의 길을 걷게 되었는가.

정규재 논설위원 겸 경제교육硏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