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전제 조건으로 인품을 꼽는 사람들이 있지만,병법가인 오기(吳起)를 보면 인품이 성공과 비례하지 않거나 심지어 별개의 차원에 속한다.

《사기》 '손자오기열전'에 의하면 오기는 작은 위(衛)나라 출신으로 병사 다루는 일을 좋아했다. 그러나 고향에서 그에 대한 평은 좋지 않았다. 오기는 자신을 잔인하고 의심이 많다고 비난하는 마을 사람 30여 명을 죽이고,어머니 앞에서 자신의 팔을 깨물면서 한 나라의 재상이 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증자(曾子)에게 학문을 배우게 됐는데,얼마 후 어머니가 별세했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놀란 증자는 사제관계를 끊어버린다. 오기는 생존전략을 위한 병법을 배워 작은 노(魯)나라로 가서 군주를 섬기는 기회를 잡게 됐다.

동쪽의 강국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자 다급해진 노나라 군주는 병법에 능한 오기를 장군으로 임명하려 했다. 그러나 걸림돌이 하나 있었다.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사람이어서 충성은커녕 배신을 할 수도 있다고 주위에서 입방아를 찧어댔다. 그러자 오기는 망설임 없이 아내를 죽여 버리고 제나라 편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물론 그는 노나라 장군이 돼 병사들을 잘 지휘했고,제나라를 크게 무찔렀다.

그러고 나서 오기는 서쪽의 위(魏)나라로 가고 싶어 했다. 위나라 문후(文侯)는 곧 오기를 장군으로 삼아 진(秦)나라를 쳐서 성 다섯 개를 함락했다. 오기는 어떻게 문후의 신망을 얻은 것일까. 사마천은 '손자오기열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고 있다. 오기는 장수가 되자 신분이 가장 낮은 병사들과 똑같이 옷을 입고 밥을 먹었다. 잠을 잘 때에도 자리를 깔지 못하게 하고,행군할 때에도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자기가 먹을 식량은 직접 가지고 다니는 등 병사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었다.

한번은 종기 난 병사가 있는데 오기가 그 병사를 위해 고름을 빨아 주었다. 병사의 어머니가 그 소식을 듣고는 소리 내어 울었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었다. "장군께서 직접 고름을 빨아주셨소.그런데 어찌하여 슬피 소리 내어 우시오?" 그의 어머니는 대답했다. "예전에 오공(吳公;오기)께서 우리 애 아버지의 종기를 빨아 준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용감히 싸우다가 적진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오공이 지금 또 제 자식의 종기를 빨아 주었으니 이 아이도 어느 때 어디서 죽게 될지 모릅니다. "

문후는 이런 오기를 서하(西河) 태수로 삼아 진(秦)나라와 한(韓)나라에 대항하도록 했다. 그러나 오기는 대단한 명성에도 전문(田文)이란 자에게 자리를 내어줬다. 그 후 공숙(公叔)이란 자의 계략에 말려 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가게 됐다. 초나라의 도왕(悼王)에 의해 재상에 임명된 오기는 법령 정비,관직 간소화,왕족들의 봉록삭감 등의 정책을 건의해 강한 국방력을 구축했다. 초나라가 남쪽으로는 백월(百越)을 평정하고,북쪽으로는 진(陳)과 채(蔡)를 굴복시켰으며,삼진(三晉)을 물리치고 서쪽으로는 신흥강국으로 떠오르는 진나라마저 공격하자 제후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내부의 적이 더 두려운 법.오기 때문에 자리를 잃게 된 초나라의 왕족과 대신들의 음모에 의해 도왕이 피살되는데,오기는 도왕의 시신 위에 엎드려 날아오는 화살을 받으며 장렬하게 죽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사마천은 각박한 행실 탓으로 돌렸다. 개혁과 성공도 좋지만 주변관리를 잘하지 않으면 언제든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wjkim@ko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