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팝아트 거장 무라카미 뉴욕·파리서 '세기의 아트 쇼'
일본 팝아트의 슈퍼 스타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 · 48)가 '현대 미술의 성지'인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에 잇달아 진출한다. 그는 지난 1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근교 베르사유 궁전에서 일본 작가로는 처음으로 작품전을 열었다. 오는 11월25일에는 미국 뉴욕 헤럴드 스퀘어의 퍼레이드 행사에서 '망가(만화)' 풍의 캐릭터를 형상화한 15m 크기의 풍선 작업 2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일본 현대미술가가 서양문화의 양대 중심축인 뉴욕과 파리에서 '세기의 아트 쇼'를 펼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술계에선 이를 계기로 일본 현대미술의 국제적 위상이 한층 높아지고 침체된 아시아 미술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962년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예술대에서 일본 전통회화를 전공한 그는 대중적인 만화 캐릭터를 현대미술로 풀어내 명성을 얻은 작가다. 만화나 영화에서 얻은 모티브를 반복하거나 새롭게 해석하면서 '오타쿠(편집광) 세계'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브루클린미술관을 비롯해 프랑스 카르티에 미술관,스페인 빌바오구겐하임 등 전 세계 유명미술관을 휩쓸며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2008년에는 미국 타임지의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됐고,2003년에는 루이비통이 그의 작품 이미지를 활용한 신상품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베르사유궁 장식한 일본 미술

베르사유궁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전시회에는 개구리와 연꽃을 형상화한 '타원형 부처'를 비롯해 '플라워 마탕고',미소녀풍의 조각상,캐릭터 조각 '가이가이'와 '키키' 등 100여점이 출품됐다. 작가의 표현대로 '야망의 엠블렘'을 임팩트 있게 드러내는 자리다.

그의 조각들은 베르사유 궁전의 다양한 고전 미술을 응시하며 관람객에게 독특한 체험을 안겨준다. 궁전의 북쪽 정원에는 5m 높이의 둥그런 황금부처상이 우뚝 서 있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공간에서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얼굴은 또 하나의 부처상을 만든다.

하늘을 찌를 듯한 8m 높이의 첨탑 조각 '통가리-쿤'(Mister Pointy)은 연꽃과 개구리의 이미지를 통해 마야 문명과 티베트 불교문화의 융합을 시도한 작품.천장에 걸린 프랑스 화가 프랑수아 르 모안느의 그림 '헤라클레스의 예찬'에 조곤조곤 이야기를 거는 듯하다.

16세기 일본 화가 카노 에이도쿠의 작품 이미지를 차용한 캐릭터 조각 '가이가이'와 '키키'는 긴 창을 들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풍요의 방'에서는 유명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키와 공동 제작한 은조각 '타원형 부처상'이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명상에 잠긴 개구리의 입과 턱수염을 붙인 부처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거울의 방' 전시실 앞 복도에는 버섯을 다채로운 색깔로 꾸민 '플라워 마탕고'가 있다. 유령영화 '고질라'에 나오는 캐릭터를 활용한 이 작품은 색깔 비가 폭포수처럼 떨어지며 10가지의 특이한 모형으로 변신토록 한 것.아폴로실에 전시된 '꿈꾸는 사자',머큐리실의 '중간과 큰 것'도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15m 크기의 대형 풍선 작품

오는 11월25일 미국 헤럴드 스퀘어에서 열리는 추수감사절 축제에는 그의 대형 풍선인형 '가이가이'와 '키키' 2점이 뉴욕 헤럴드 스퀘어에서 페레이드를 펼친다. 가이가이와 키키는 '괴괴기기(怪怪奇奇)'란 말로 '무섭지만 매력을 준다'는 뜻.팝아트에 관련된 모든 것을 기획 · 제작하는 예술공장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는 "토끼 모양의 귀여운 캐릭터인 가이가이와 3개의 눈을 가진 키키를 지난 봄부터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있다"며 "젊은 층의 관람을 위해 이전보다 세련된 색깔로 캐릭터를 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만화에서 영감을 얻은 자신의 대표작과 대규모 신작 조각을 이번 아트쇼 곳곳에 설치할 예정이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아트쇼는 일본 현대미술의 탄탄한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만화풍의 작품이 전 세계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나 요란하고 외설적인 소재 때문에 비난도 종종 받는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