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최고경영자로 17일 선임된 구본준 부회장(사진)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열심히 하겠다"는 말 속엔 자신감이 들어 있었고,"할 일이 많다"며 회사 일을 걱정하는 모습에선 고뇌가 엿보였다.

구 부회장을 만난 것은 이날 낮 서울 마포의 한 삼계탕 음식점에서였다. 이날 오전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열린 이사회가 끝난 뒤 LG상사 임원 3명과 점심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구 부회장은 옅은 LG 로고가 박힌 베이지색 근무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인삼주 한 병에 삼계탕 한 그릇을 비웠다. 정식 인터뷰를 제안했으나 몇 번씩 고사했지만,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자 "인사만 하자"며 자리를 내줬다.

LG전자 사령탑을 맡게 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입술을 살짝 오므리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다운 짧은 화법이었지만,힘이 실려 있었다. 구체적인 경영계획을 묻자 "열심히 하겠다. 지켜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스마트폰과 TV 등 현안을 꺼냈더니 "할 일이 많다"며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정말 할 일이 많아…"라는 혼잣말과 함께 생각에 잠겼다.

구 부회장은 이날 오전부터 LG전자 임원들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트윈타워 14층 집무실 앞에는 한번에 대여섯명의 임원들이 보고 순서를 기다릴 정도로 바쁜 오전 일정을 보냈다. 김영기 LG전자 부사장은 직접 리모델링 중인 트윈타워 설계도를 가져와 브리핑을 하기도 했다.

사업 현안 이야기에 구 부회장은 "보고받은 것도 있고,(앞으로) 받을 것도 많다"고 했다. 몇 년 만의 LG전자 복귀인지 물었다. 구 부회장은 옆에 앉은 임원들을 돌아봤다. 오래전 일을 더듬듯 "15년 만인가…"라며 말끝을 흐렸다.

구 부회장은 경복고와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하고 유학길에 오른 뒤 미국 시카고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LG전자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금성사' 시절인 1987년.LG전자에서 9년간 근무한 뒤 하이닉스의 전신 격인 LG반도체에서 대표이사를 지냈다. 이후엔 LG디스플레이(현 LG필립스LCD),LG상사의 경영을 연이어 맡았다. 그는 "그동안 반도체,디스플레이,상사부문에서 많은 경험을 했다"며 "아무래도 (LG전자 경영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나"라고 자신했다.

조직재편 방향을 묻자 "오늘 아침 이사회를 열었는데,앞으로 홍보라인을 통해 발표할테니 그때 기사를 쓰라"며 앞으로 큰 폭의 조직개편이 뒤따를 것임을 내비쳤다.

한 시간반 남짓한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 구 부회장은 사진찍기를 끝까지 고사했다. "열심히 하겠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 뒤 오후 회의와 업무 인수인계를 하러 간다며 서둘러 차에 올랐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삼남으로 형인 구본무 회장과 호흡을 맞춰 위기에 빠진 LG전자의 재도약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의 등 뒤에서 느껴졌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