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초 일본의 소니가 트랜지스터 기술을 해외에서 사올 때였어요. 귀한 달러를 주고 사온 기술인 만큼 일본에선 대단한 공장이 오는 줄 알았는데 막상 하네다공항에 도착한 짐을 보니 트럭 절반 분량의 도면뿐이었거든요. 일본 통산성 관리들이 이걸 보고 깜짝 놀란 뒤 '기술과 지식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구나' 절감했고,결국 기술로 세계를 제패했지요. 지식산업이 그만큼 중요한 겁니다. "

경기도 성남시 대왕판교로에 있는 한국도로공사 지하 1층 도서실.가운데 탁자를 중심으로 알록달록한 색깔의 의자를 원형으로 둘러놓은 북카페에서 류철호 사장(62)은 지식의 중요성을 이렇게 역설했다. 기업 간 경쟁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 싸움인데 1년에 몇 권의 책을 읽느냐가 그 기업의 역량이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그는 "《회사인간의 흥망》(한국경제신문)을 쓴 영국 저널리스트 앤서니 심슨은 실리콘밸리의 탄생은 두뇌와 교육 덕분이라고 했다"며 "교육열이 엄청난 우리나라도 노력하면 못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류 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독서광이다.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나와 대우건설에서 30년 동안 일한 그는 원래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에 더 관심이 많았다. 유럽 · 수단 · 리비아 · 나이지리아 등의 건설현장에서 일한 15년은 오히려 독서의 기회였다.

"평생 책과 함께 산 편입니다. 사실 책을 읽는 게 제일 싼 오락이거든요. 300쪽 분량의 1만원짜리 책을 하루 1시간씩 읽으면 1주일에 한두 권은 읽을 수 있어요. 그 시간에 영화를 보고 외식하고 해 보세요. 시간이며 돈이며 얼마나 드는지….책을 읽으면 모양도 근사하고 남과 대화할 때에도 써먹을 수 있으니 유용하잖아요. "

류 사장이 지금까지 읽은 책은 2000권에 가깝다. 그는 책을 읽으면 책 끝장의 빈 공간에 책에 관한 촌평이나 감상을 짧게 적어놓는다. 그리고 읽은 책의 저자와 제목,출판일,출판사 등을 적은 '독서목록'을 30년 이상 작성해왔다. 독서목록을 보니 그의 지적 편력이 일부나마 그려진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비롯해 《관촌수필》 《혁명과 우상》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등 국내서나 번역서는 물론 영국박물관이 펴낸 《Death in ancient Egypt》 등의 외서도 허다하다.

"그동안 읽은 책 중에 많이 생각나는 것은 《회사인간의 흥망》의 저자가 세계 7대 석유 메이저를 다룬 《세븐 시스터즈》,한국경제신문에서 나온 《한국의 경제관료》 등입니다. 세계적인 저널리스트 톰 벤더빌트가 쓴 《트래픽》책에는 정체는 풍요의 상징이다 등의 유명한 말이 나와요. 제가 사장으로 와서 내건 '빠른 길,편한 길,안전한 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도 여기서 얻은 아이디어죠."

류 사장이 독서경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41년의 역사 가운데 28년을 군 장성들이 경영을 맡았고 민간인 출신 사장은 그가 처음이다. 따라서 도로공사의 조직문화는 상당히 수동적이고,먼저 나서서 일을 하려는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류 사장은 독서교육을 서비스 등 개인의 역량계발을 위한 일반과정과 경제 · 사회 · 인문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최고경영자(CEO)가 추천해 읽게 하는 CEO추천과정 등 두 가지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독서교육 참가자는 지난해 1200여명,올해에는 2000여명에 이를 것이라고 설명한다.

"책을 읽고부터 조직문화가 유연해졌어요. 전에는 직원들이 보고할 때 교통량에만 초점을 뒀지만 이제는 통행료를 먼저 생각합니다. 공기업도 기업이니까요. 그런 점에서는 성공했다고 봅니다. "

독서경영을 통한 경영혁신 성과를 묻자 "중요한 것은 본업에 충실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누구나 경영을 말하지만 경영이란 인간이 지녀야 할 삶의 기본적인 도리이며 그것은 이미 2000년 전 《사기》 '열전'에서 다 형성된 것 아니냐고 했다. 그가 '하이패스 전도사'를 자임하는 것도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고속도로의 최대 목적은 빨리,편하고 안전하게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이패스 전국망이 구축된 게 2007년 말인데 당시 16%이던 이용률은 이제 46%까지 올라갔다. 휴게소에서 고급브랜드 음료를 팔고,셀프주유소,쇼핑몰 개념의 휴게소 등을 도입한 결과 덕평휴게소는 지난해 200억원이던 매출이 올해 350억~400억원으로 급증하고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한국경제·교보문고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