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이견이 있지만 학자들은 독일의 정치 ·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가 20세기 기업 조직의 기본 골격을 만들었다는 데 대체로 동감한다. 베버는 관료제를 가장 이상적인 조직 형태로 제시했는데,그가 꿈꾸었던 관료제 조직은 다음 몇 가지 원칙에 의해 움직였다.

우선 모든 구성원들의 담당 업무와 책임이 명확히 묘사되어 있다. 직위는 권한의 크기에 따라 계층 구조로 조직된다.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은 맡은 업무와 관련된 엄격한 규칙의 통제를 받는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GM,듀폰,AT&T,필립스 등 20세기 거대 기업들은 결국 베버가 제안한 관료제의 틀에서 움직였고,이러한 관료제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은 중앙집권화와 정교한 통제 모델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산업 사회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정보화 혹은 지식경제 사회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지금까지 정립된 경영 관행에 대한 대대적인 반성이 시작되었다.

《불가사리와 거미》는 이러한 21세기 조직 혁신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들의 주장은 단순하면서도 매우 강렬하다. 20세기형 조직을 거미에 비유한다면,21세기형 조직은 불가사리에 비유할 수 있다. 머리가 잘리면 목숨을 잃는 거미와 달리 불가사리는 다리가 잘리면 그것이 다시 분화하여 새로운 개체로 성장하는 특징을 가졌다.

저자들은 불가사리처럼 분권화된 개체가 자생력을 얻어 성장하는 조직 모델을 불가사리 조직이라고 명명했다. 따라서 불가사리 조직의 키워드는 분권화와 자율성이다.

이러한 불가사리 조직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책에 소개한 예들도 흥미롭다. 16세기 무적의 스페인 군대는 남미의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을 멸망시켰다.

그러나 이들은 원시인처럼 보였던 아파치족에게 허망하게 패배했다. 아파치족이 아즈텍족이나 잉카족에게 없는 비밀 무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들이 최강 스페인 군대에 대항해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아파치 부족의 조직 방식 덕분이었다.

이들은 철저하게 분권화된 조직이었다. 아파치족은 소수의 최고 권력자도,중앙 지휘본부도,수도도 없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언제,어느 곳에서나 결정이 내려질 수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컨대 스페인군들은 마을을 습격하고 지도자를 없애는 전략을 시도했지만,마을이나 지도자 몇 명이 없어진다고 해서 아파치족 전체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지도자가 금세 등장하고 부족이 재건되면서 유연하게 대처했던 것이다.

물론 분권화된 조직이라고 해서 규율이 전혀 없거나 혼란스러운 무정부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4장에 소개되는 것처럼 불가사리 조직을 움직이는 구조와 원칙들이 존재한다. 불가사리 조직에는 지배자와 같은 리더는 없어도 촉매자 역할을 하는 리더가 존재한다. 또한 불가사리 조직에는 세부적인 규칙과 통제가 없어도 구성원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는 핵심 이념은 공유된다.

사실 오래 전부터 이 책의 주장과 흡사한 권한 위양,자율성,벽 없는 조직 등이 혁신의 화두가 되어 왔다. 다만 문제는 기존의 경영자들이 이러한 조직 혁신을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분권화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직의 상층부에 집중되어 있는 권한을 재분배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최고경영진들이 가진 기득권과 권력을 일부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혁신을 주저하는 것이다.

불가사리 조직이 웹 2.0으로 상징되는 인터넷 기업에만 해당하는 원리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들은 도요타,GE,애플의 예를 들어 분권화의 원리는 모든 조직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오해는 말자.저자들이 극단적인 분권화만을 주장하는 급진주의자들은 아닌 것 같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베이나 IBM처럼 불가사리와 거미의 장점을 결합한 혼합형 조직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동현 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