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는 스스로 몸을 비트는 과정이다. 담쟁이 덩굴이 햇빛을 얻기 위해 몸을 꼬아가며 콘크리트벽을 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때로는 변화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진입장벽을 치고 경쟁자들을 제압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환경 변화에 맞춰 변신을 시도하는 진화의 과정도 있다.

부동의 글로벌 브랜드 톱 기업인 코카콜라가 전자의 경우라면,국내 4대그룹의 일원인 SK는 후자에 해당된다. 물론 두 개 기업 모두 미래를 완벽하게 내다보고 생존한 것은 아니다. 변화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방식대로 적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코카콜라가 처음 세상에 선보인 것은 1886년.당시 약사인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존 S 펨버튼 박사가 콜라나무 열매와 코카잎 같은 천연성분을 이용해 톡 쏘면서도 상큼한 맛의 음료를 개발한 것.

코카콜라는 처음에 피로 해소나 두통 치료제로 약국에서 팔렸다. 개발자가 대중성에 별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888년 펨버튼 박사가 제조법을 아서 캔들러사에 팔며 한 얘기는 무척 심드렁했다.

"이건 단지 소화제일 뿐이라고요. "

아서 캔들러 역시 인수 초기엔 약방만 쳐다봤다. 하지만 코카콜라가 갈증 해소는 물론 기분까지 상쾌하게 한다는 입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나가자 마케팅 전략을 전면 수정하게 된다.

# 루머 · 모조품엔 정면대응

코카콜라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자 동시에 잘못된 정보나 음해성 루머도 늘어났다. 특히 원료인 코카잎에 대한 성분이 초기부터 계속해서 문제가 되었고,코카콜라를 많이 마시면 모르핀 중독이 된다는 루머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마약성분인 코카인은 코카잎의 특정 성분만을 추출하여 화학처리를 통해 만들어내는 것으로 일반적인 코카잎과는 완전히 다른 성분.오히려 코카잎은 페루인들이 2000년 이상 애용할 정도로 건강에 좋은 천연물질이었다.

코카콜라는 이를 바탕으로 청량음료의 건강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데 전력투구했다. 특히 영화 스포츠 스타 등을 광고모델로 활용,콜라가 활력을 주는 건강한 청량음료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또 다른 장애물은 유사제품 범람이었다. 펨버튼 박사가 생전에 코카콜라 제조법을 여러 사람에게 팔기도 했지만 나날이 높아지는 인기만큼 판매 초창기부터 많은 유사품들이 생겨났다. 모조품들은 특히 1903년 병포장 시대를 맞아 '아프리 콜라''카페 콜라''캔디 콜라''카보 콜라' 등의 이름으로 더욱 기승을 부렸다.

이에 코카콜라는 상표등록과 함께 법정 투쟁을 시작하는 한편 1915년 어둠 속에서도 다른 유사품과 확실히 구별되는 '컨투어 병'을 고안해냈다. 많은 사람들이 컨투어 병의 원형이 주름치마를 입은 여자의 모습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코코넛 열매를 본 떠 만든 것이다. 이후 코카콜라 컨투어 병은 미 특허청에 상표 등록되면서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독창성을 보장받았다.

# '클래식'으로 펩시를 누르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최대의 위기는 영원한 라이벌이자 코카콜라보다 불과 7년 늦게 탄생한 펩시콜라의 도전이었다. '콜라 전쟁'이 한창이던 1980년대 만년 2위 펩시가 이색적인 TV 광고를 내보냈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눈을 가린 채 "어떤 콜라가 더 맛있을까요?"라는 시음회 모습을 내보낸 것.광고에선 테스트 결과 펩시가 월등하다는 내용이 소개됐고 당시 이 광고로 펩시는 매출 상승세를 탈 수 있었다.

위기감을 느낀 코카콜라는 1985년 9월 이전 콜라에 비해 더 부드럽고 달콤한 '뉴-코크'를 출시했다. 무려 99년간 고수해 온 전통적인 맛을 포기한 것.하지만 출시 후 예상 외의 반응이 나타났다. 기존 코카콜라 팬들로부터 그저 펩시콜라를 흉내 낸 수준에 불과하다는 항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코카콜라는 결국 두 달 만에 두 손을 들었다. 예전의 맛 그대로 '코카-콜라 클래식'이라는 이름의 제품을 생산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른 것.당시 미국의 거의 모든 신문은 '클래식 코-크'에 관한 기사를 1면에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며 CNN에서는 속보로 다룰 정도였다. 실패를 재빨리 인정한 '코카-콜라 클래식'의 부활로 코카콜라는 다시 한번 세계 최고의 청량음료 지위를 회복할 수 있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