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이맘때쯤 아프리카를 방문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중심지에서 'Life if Good'이라는 LG전자 광고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었다. 현지인들을 만나보니 가전제품은 LG전자가 최고 인기이고,휴대전화는 삼성전자라는 설명이었다. 거리에는 현대자동차가 도요타자동차와 경쟁하며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남아공 사람들에게 한국은 그야말로 기적을 만든 '꿈의 나라'다.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민주화의 꽃을 피우고 월드컵 축구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나라가 바로 한국인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대학교수들도 모두 한국의 기적을 칭찬하고 부러워했다.

그런데 마침 나는 희망봉을 들렀다가 얼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고 말았다. 이 역사적인 장소의 계단 바위에 누군가가 한글로 어지럽게 낙서를 해놓은 것이었다. '?????? 다녀가다. ××년 ××월 ××일' '????야 사랑한다!' '××대학,입학기원'

희망봉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관광지에 가보면 대개 이런 한글낙서들이 눈이 띈다. 심지어는 세계적인 유적지에까지 한글로 낙서를 해놓은 사람이 있다. 중국이나 동남아 골프장 중에는 '한국인 출입금지'라고 한글로 써놓은 곳도 있다. 한국 관광객들이 단체로 몰려와 고액의 내기골프를 하거나 캐디를 함부로 대하고 식당에서 폭탄주 파티를 하면서 큰 소리로 떠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 관광객들이 올텐데 유독 한국인 출입금지라고 써놓은 걸 보면 서글픔과 함께 분노가 느껴진다. 히말라야를 포함한 세계적 명산에도 한국인들이 몰려들면서 초코파이 봉지나 한국산 라면봉지가 굴러다닌다는 말도 들린다. 모두 한국인의 모습을 깎아내리는 추태들이다.

요즘 국가브랜드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고 있다. 국가브랜드가 좋아야 상품이 제값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국민이 세계로 나갔을 때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국가브랜드 평가는 다양하게 나온다. 세계 50개 국가를 대상으로 국가브랜드를 평가해서 발표하는 안홀트 지수(Anholt Index)로는 33위에 속한다. 세계 13위의 GNP로 보면 우리의 브랜드 가치가 약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산업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08년 국가브랜드가치 평가에서 미국이 약 9조달러로 1위,독일이 약 6조3000억달러로 2위,영국이 3조7000억달러로 3위에 랭크됐고 한국은 약 1조1000억달러로 10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평가기관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은 항목 등 평가방식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순위가 아니라 국가브랜드 가치에 대한 중요성 인식이다. 최근 우리나라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국가브랜드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리고 5대 역점 분야로 국제사회 기여,첨단기술 · 제품 브랜딩,매력 있는 문화관광,다문화 외국인 수용,글로벌 시민의식 향상을 선정했다.

세계 일류 브랜드 국가들이 과거에 국가브랜드 가치나 국가 이미지 향상을 위해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해 성과를 거둔 것을 참고할 때 국가브랜드 가치의 국민적 공유와 실천을 위해 의미 있는 출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국가브랜드 가치인식과 행동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해외봉사단 활동을 코리아 서포터즈라는 단일브랜드로 통합하고 국제기여와 기부활동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민 개개인이 성숙한 글로벌 시민의식을 가지고 에티켓과 매너를 유지하지 않으면 명품 브랜드는 결코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