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내린다면….' 히토요시에서 함박눈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히토요시는 규슈 중앙 구마모토현 남부의 소도시.아소산 등의 고지대를 제외하면 눈이 없다시피한 곳이 규슈인데,히토요시는 그 규슈에서도 남쪽에 가까운 저지대의 분지형 도시라 눈발이 날릴 리 없는 까닭이다. 그래도 모처럼 영하로 떨어진 수은주에 눈풍경을 그려 본 것은 순전히 온천의 운치를 생각해서다. 일본의 온천은 아기자기한 '로텐부로(노천 온천)'가 있어 멋스럽다. 이 로텐부로는 눈 내리는 날의 운치가 압권이다. 뜨끈한 온천수에 후끈 달아오른 몸과 알맞게 차가운 머리 위로 날리는 눈발을 즐긴 경험이 있다면 로텐부로와 눈의 궁합에 토를 달지 못한다. 그렇다고 히토요시 지역 로텐부로의 운치가 눈이 많은 지역 온천의 그것에 뒤지는 것은 아니다. 로텐부로와 눈의 운치는 쌓이는 눈 사이로 커져 가는 적막감에서도 비롯되는데 '규슈의 작은 교토'라고 불리는 히토요시는 이미 충분히 차분하다.

강줄기 따라 이어진 온천료칸

히토요시 시(市)는 50개 이상의 원천이 있는 온천 도시다. 온천 개발의 역사는 분명치 않지만 500여년 전 당대의 성주가 온천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폭넓은 구마강 가에 전통 료칸 10곳을 포함한 38곳의 온천이 자리해 있다. 온천 박사로 알려진 삿포로국제대학의 마쓰다 타다노리 교수가 선정한 '일본의 명온천 신(新)100'의 주인공들이다.

히토요시 료칸은 일본 전통 료칸의 멋과 맛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34년 문을 열었으니까 75년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2층 목조 건물로 반질반질 윤이 나는 복도는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걱 소리가 난다. 깔끔하게 정돈된 다다미 방의 창문 밖 구마강 전망이 자랑이다. 정원수로 빼곡한 안쪽 마당 분위기는 차분하다. 마당을 돌아 흐르는 온천수에서 피어나는 수증기가 몽환적 분위기를 만든다. 온천탕은 좁고 낡았다. 옛날 시골의 허름한 공중 목욕탕을 연상시킨다. 온천수는 무색 무취의 나트륨 탄산수소염천이라는데 탕에 가득한 물빛이 예사롭지 않다. 탕이 오래돼서인지 시커먼 게 꽤 깊어 보인다.

히토요시 료칸은 한국말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내 집에 있는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을 준다. 호리오 사토미(한국명 손종희)란 이름의 '오카미'(여주인)가 한국 출신인 것.히토요시 료칸의 3대째 오카미인 호리오씨는 올해로 일본 생활 17년째다. 여행사에서 일본어 통역 가이드를 하던 1992년 남대구청년회의소와의 자매결연 행사를 위해 방한한 남편을 만나 금방 결혼했다.

"한국 손님은 연간 800~900명이 찾는데 주로 겨울철에 몰려요. 골프 손님이 많은 편이에요. 비행기 표만 끊고 오는 개별 여행객도 반이 넘어요. 전화 연락만 주면 공항에 마중 나가거든요. "

아유노사토는 세련된 호텔식 료칸으로 유명하다. 2005년 리노베이션을 하고 재오픈했는데 객실은 일본 전통 료칸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대욕장에 딸린 바위 조경의 로텐부로가 좋다. 통유리를 사이로 노천탕과 실내탕이 나뉘어 있어 실내에서도 노천탕 분위기를 낼 수 있다.

다카라유도 고급스런 료칸이다. 큰 방 하나 크기로 가족탕 분위기가 나는 온천탕은 바닥과 벽에 나무를 대 차분한 느낌을 준다. 응접실과 바 등의 디자인도 세련미가 넘친다.

스이란루는 3개의 원천을 갖고 있는 호텔식 료칸이다. 히토요시에서 처음으로 온천이 터진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10년에 개발됐으니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당시 총리가 쓴 료칸명 휘호가 특별실 내에 걸려 있다. 로텐부로가 딸린 다다미방 2개 등 30실 규모로 구마강 전망이 일품이다. 크지 않은 온천장과 정원 식으로 꾸며놓은 로텐부로의 분위기가 은근하다. 외부의 족욕탕 시설도 깔끔하다.

호텔이나 전통 료칸이 아닌 '공중 온천'에서도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신온천(新溫泉)이 대표적인 공중 온천이다. 내부는 허름하다. 1960년대 시골 목욕탕 분위기라고 할까. 제법 넓은 실내 한 쪽에 2개의 작은 탕이 붙어 있다. 조금은 휑해 보인다.

구마강 쪽배 유람과 히나마쓰리

히토요시에서는 구마강 쪽배 유람을 해 봐야 한다. 온천 료칸이 늘어서 있는 구마강은 사실 일본 3대 급류로 꼽히는 래프팅의 명소다. 히토요시 시내 승선장에서 와다리까지 천천히 강 주변 경관을 즐기며 내려가는 '청류 코스'와 와다리에서 규센도까지의 급류를 타는 '급류 코스'가 있다. 각각 1시간 반 코스다. 청류 코스는 연중 이용할 수 있고,본격 래프팅이 가능한 급류 코스는 물이 불어나는 4~10월 중 체험할 수 있다. 고무 보트나 쪽배를 이용하는 데 쪽배 유람이 더 운치 있다. 쪽배는 15인승.두 명의 사공이 앞뒤에서 노를 젓고 방향을 틀며 물길을 따른다. 청류 코스는 편안하게 강바람을 즐기며 여유를 부리는 코스이지만 제법 급한 여울도 있어 유람의 묘미를 더해 준다. 구마강변의 벚꽃이 만개하는 3월 말에서 4월 초가 쪽배 유람의 절정이겠다.

3월 초라면 '히나마쓰리'를 즐길 수 있다. 히나마쓰리는 여자 아이들의 무병 장수와 행복을 기원하는 전통 축제로 해마다 3월3일에 열린다. 딸을 둔 가정에서는 이날 갖가지 장식을 한 히나 인형과 히나 과자,떡 등을 붉은 천이 덮인 단 위에 올려놓고 온 가족이 모여 음식을 나눠 먹는다. 히토요시에서는 히나마쓰리 기간 중 온천과 관광지마다 히나 인형을 전시하며 다양한 이벤트를 펼친다. 센도쿠지란 절에서 전시하는 히나 인형이 볼 만하다. 3000여 개의 인형이 사찰 별관 전시실에 가득하다. 에도시대 때부터 지금까지의 히나 인형 양식을 다 볼 수 있다. 아베 고쇼란 주지가 40년 넘게 수집한 인형들인데 현의 관광 포스터에도 그 모습이 보인다. 지난해 국보로 지정된 아오이 아소 신사도 둘러볼 만하다. 규슈에서는 두 번째로 지정된 국보 신사로,농업의 신을 모시고 있다. 국보로 지정된 본전 등 일곱 채의 건물 모두가 400년 전 당시의 건물이라고 한다.


뒤끝이 깔끔한 구마 소주와 음식

히토요시는 구마 소주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구마 소주는 100% 이 지역 쌀과 물로 빚은 증류주.가고시마의 고구마 소주,오이타의 보리 소주처럼 널리 알려진 술이다. 현재 28개 업체에서 140개 브랜드의 구마 소주를 내놓고 있다.

센게츠주조가 제일 크다. 3대째 160년 된 양조장으로 이 지역 소주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적 양조 설비를 갖추고 있다. 센게츠주조의 바바유지씨는 "쌀의 품질,그리고 숙성하고 증류하는 방법에 따라 소주 맛에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과연 한 양조장에서 빚은 술인데도 그 맛이 각기 다르다. 알코올 함량이 25도 정도로 우리나라 소주에 비해 독한 편인데 목넘김이 부드럽고 뒷맛은 깔끔한 것 같다.

후카노주조는 땅에 묻은 항아리에서 발효시키는 전통 방식으로도 구마 소주를 만들고 있다. 30ℓ짜리 옹기에 밀봉해 보관했다가 기념일에 꺼내 마시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구마 소주에 어울리는 향토 음식도 다양하다. 말고기가 특이하다. 가토 기요마사가 임진왜란 뒤 먹을 게 없을 정도로 궁핍했을 때 죽은 말고기를 먹게 했다는 데서 말고기 식용이 시작됐다고 하는데 확실치는 않다. 마늘과 생강을 곁들인 간장에 찍어 먹는 '바사시'(말고기 육회)가 부드럽다. '가라시렌콘'도 구마모토의 명물 요리.둥글게 썬 연근 구멍에 보리 된장을 섞은 겨자를 채워 유채 기름에 튀겨 낸 것이다. 코를 톡 쏘는 매운 맛과 연근의 식감이 식욕을 돋운다. 옛날 병약했던 호소카와 영주가 가라시렌콘을 먹고 건강해졌다는 얘기가 전한다. 호소카와 가문의 문장이 구멍이 아홉 개인 연근과 비슷해 더욱 아끼던 음식이라고 한다. 은어 구이는 히토요시의 별미.구마강에서 잡은 싱싱한 은어를 구워 상에 올리는데 그 맛이 담백하다. 료칸의 가이세키 요리에도 빠짐없이 나온다. 창업한 지 100년 된 우에무라우나기의 장어 덮밥도 입맛을 살려 준다.

한 가지 더.남자 어른끼리라면 히토요시의 독특한 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클럽 돔'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겠다. 1인당 5000~6000엔에 맥주를 제외한 술과 음료,그리고 노래를 70분간 즐길 수 있다. 도우미들도 나온다.

히토요시=글 · 사진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 여행 TIP ]

구마모토현은 일본 규슈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인구는 180만명,현청 소재지는 구마모토 시다. 푸근한 농촌 풍경과 아소 활화산,온천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주 3회 구마모토 직항편을 운항한다. 부산에서 쾌속선을 타고 후쿠오카로 들어가 후쿠오카 하카타 역에서 가고시마혼센을 이용해 구마모토 역까지 갈 수도 있다. 구마모토에서 히토요시까지는 규슈JR를 통해 구마모토 역에서 특급 구마가와호를 타는 게 가장 편리하다. 히토요시 시(www.city.hitoyoshi.kumamoto.jp)와 히토요시 온천관광협회(www.hitoyoshi-city.com) 홈페이지를 통해 히토요시시 관광 및 온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ICC가 구마모토현 관광 홍보를 맡고 있다.

(02)737-1122,www.japanp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