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는 올해 '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이라는 이중고를 겪을 것으로 경제연구기관들은 보고 있다.

최근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경기와 물가라는 거시경제의 양대축을 놓고 볼 때 '물가가 더 걱정'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정책 대응측면에서도 일단 물가를 잡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 늘어나고 있다.

◆경기는 소폭,물가는 대폭 악화될 듯

국내 연구기관들은 최근 들어 잇따라 성장 전망을 낮추고 물가 전망을 높이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달 중순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0%에서 4.8%로 수정했고 현대경제연구원도 이달 말 5.1%에서 4.9%로 바꿨다.

앞서 금융연구원(4.8%→4.5%)과 한국경제연구원(5.1%→4.5%),삼성경제연구원(5.0%→4.7%),LG경제연구원(4.9%→4.6%)도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이는 정부의 연 6% 이상 성장 목표에 미치지 못하지만 최근 세계경제 침체 우려와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연 4%대 후반~5%가량)을 감안하면 그리 비관적인 수준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내수는 부진할 것으로 보이지만 수출이 예상 외로 호조를 보이면서 전체 경기는 소폭 둔화에 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연구소는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치를 4.5%에서 3.4%,설비투자 증가율 전망을 8.5%에서 6.5%로 낮춘 반면 수출 증가율 전망은 11.1%에서 16.6%로 높였다.

반면 물가 불안에 대한 경고는 심각해지고 있다.

KDI가 전망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8%에서 4.1%로 뛰었다.

한경연도 당초 3.0%이던 전망치를 4.1%로 끌어올렸고 현대연은 당초 2.8%이던 전망치를 3.8%로 높여잡았다.

이는 한국은행의 물가관리 목표상한선(3.5%)을 뛰어넘는 수치다.

국내 연구기관들은 대체로 경기 둔화폭에 비해 물가 상승폭을 훨씬 크게 보고 있다.

한국은행은 오는 7월에 수정 전망치를 내놓을 예정이다.

이성태 총재가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밝힌 내용을 종합해보면 한은이 보는 올해 경제 성장률은 4.5% 이하,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3% 이상일 가능성이 크다.

경기와 물가 모두 한은의 당초 전망치(성장률 4.7%,소비자물가 상승률 3.3%)보다 악화된다는 것이다.

향후 경기와 물가 흐름을 좌우할 변수로는 무엇보다 유가와 환율이 꼽힌다.

문제는 유가와 환율이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물가 불안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상수지는 균형 vs 대폭 적자

경상수지에 대해선 연구기관마다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KDI와 현대연은 올해 경상수지가 '균형 수준'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KDI는 올해 경상수지 적자폭을 당초 26억달러에서 6억달러로 줄여잡았고 현대연도 50억달러에서 10억달러로 전망치를 수정했다.

반면 한경연은 경상수지 적자가 당초 전망했던 74억달러보다 늘어나 88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연(59억달러 적자)과 LG연(97억달러 적자)도 비교적 큰 폭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경상수지가 균형 수준일 것으로 보는 기관들은 환율 상승 등으로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는 점을 주된 이유로 꼽고 있다.

반면 경상수지 대폭 악화를 점치는 기관들은 유가 급등으로 수입대금이 늘어난 데다 세계경제 불안으로 수출이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양재룡 한은 국제수지팀장은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원유는 연간 약 9억배럴이며 이 중 재가공해 수출하는 물량을 빼면 6억배럴 정도가 유가 상승으로 타격을 받게 된다"며 "유가가 배럴당 10달러만 올라도 경상수지 적자폭이 60억달러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가 불안부터 잡아야

국내 경제가 처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물가 불안 심리를 차단하는 데 신경써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동철 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지금 상황에선 물가 성장 경상수지 등 주요 거시경제 목표 가운데 물가 안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통화정책 측면에선 금리 인하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도 "추경 편성 등 재정정책을 통해 급격한 내수 위축을 막을 필요가 있다"면서도 "환율이 워낙 많이 올라 금리 인하라는 말을 꺼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