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昌洙 < 세종연구소 부소장·정치학 >

"헌법 개정에 대해서 개정 반대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지난번 일본 방문시 만난 아사히신문 여론 담당자의 말이다.

그 이유로 당시의 아베 신조 총리가 추진하는 헌법 개정에는 찬성할 수 없다는 보수 세력이 늘어난 것과 동시에 아베 이후 헌법 개정의 흐름이 정착될지도 모른다는 혁신 세력의 우려가 확산됐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게다가 일본 국민들은 연금 문제나 경제 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해 아베가 주장하는 헌법 개정이나 전후(戰後) 체제의 탈피에는 점차 싫증을 내고 있다고 한다.

작년 9월 발족 당시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63%로 역대 정권의 출발할 때 지지율로는 2001년 4월 고이즈미 정권의 80% 다음으로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렇지만 이후 계속된 지지율 하락으로 인해 발족 5개월 만에 지지율은 30%로 추락했다.

게다가 오는 11월1일로 기한이 만료되는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의 연장 문제는 아베 정권의 존속 여부를 판가름할 시험대로 남아 있었다.

만약 법안 연장이 좌절되면 자위대의 철수가 불가피해지면서 어차피 아베 정권의 운명은 기로에 설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11월 이후 아베가 국회 해산이나 총사퇴를 할 것으로 예측됐었다는 점에서 이번 아베의 사퇴는 다만 시기가 앞당겨진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일본 정치의 흐름에서 아베의 사퇴는 첫째 신자유주의 개혁을 향한 아베 총리의 미온적인 자세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 국민들에게 아베가 주장하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부 개입은 기존의 자민당 정치로 돌아가고 있다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다.

심지어 신자유주의 정책의 부분적인 후퇴라고도 보았다.

둘째 아베 총리의 지도력에 대한 불신을 들 수 있다.

아베 정권 탄생 이후 끊임없이 나타난 아베 내각의 각료 실언과 부정은 총리의 리더십에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각료의 잇단 부정부패'는 '총리의 지도력에 기대할 수 없으니까'로 쉽게 연관됐으며 자민당 내에서도 '총리의 지도력 부족으로 당내 장악에도 실패하였다'는 지적이 나오게 했다.

야마자키 전 총재는 각료의 실언을 두고 "총리에 대한 각료들의 존경심이 없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게 됐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셋째 아베 총리의 헌법 개정과 교육기본법에 대한 주장이 일본인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베 총리는 개헌과 교육기본법 등에서 '아베색'을 강조해 왔지만 유권자에게는 강한 인상을 안겨주지 못했다.

아베 총리의 사퇴로 인해 아베가 주장해 왔던 교육 재생을 통한 교육 개혁,납치 문제의 해결,헌법 개정 등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의 사퇴를 통해 헌법 개정,대북 강경정책 등과 같은 안보적인 문제에서 정치적인 지지를 동원하려던 아베의 구(舊)정치적인 모습이 일본 국민들에게 그다지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더욱이 아베 총리가 주장하는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수정 제안을 놓고 국민들은 그의 개혁 의지에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그것은 '비전의 부재'에서 초래된 것이다.

당장은 차기 총리가 누가 되든 아베를 사퇴로 몰고 간 테러대책법 처리라는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민주당이 아베 총리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법안 연장 반대 입장을 분명히한 만큼 테러대책법 연장은 차기 총리에게도 자신의 향후 운명을 가늠할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앞으로 차기 정권의 향방은 신자유주의 개혁을 얼마나 확고히하면서 일본 국민의 미래의 삶과 비전을 제시하느냐 하는 데 있을 것이다.

이 점이 올해 말 대선과 내년 총선을 치를 한국의 정치권이 일본으로부터 얻을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차기 정권은 아베 정권의 종말을 교훈삼아 국내 정치 개혁에 경주할 가능성이 높으며,현재의 외교 정책은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일본의 대북 강경 기조는 유지될 것이며,한·일 관계도 급격한 진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러한 때 한국은 일본을 무시해 고립시키기보다는 일본과의 전략적인 이해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큰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