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자녀와 아내를 외국에 보내고 국내에서 쓸쓸히 생계를 꾸리는 기러기 아빠는 '해외 유학 붐'의 희생자임에 틀림없다.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가 외로운 기러기 아빠들의 비만 외도 자살 등을 소개하며 "기러기 아빠가 희생이라고 하지만 도박이기도 하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기러기 아빠는 '남성판 화병'

오강섭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는 "핵가족 시대에는 서구처럼 '부부 중심'으로 가족관계가 운영돼야 마땅한데 한국 등 동양사회는 핵가족이면서도 지나치게 '자녀 중심'으로 흐른 나머지 왜곡된 가족관계를 갖게 되고 이 때문에 기러기 아빠가 양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년기에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은 그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이자 가족의 부분적 해체를 의미한다"며 "중년 자살의 대부분이 경제적 곤궁과 가족관계 해체에서 비롯한다고 볼 때 '기러기 아빠'는 이들 두 가지 위험 요소를 안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외국의 경우 기러기 생활을 십중 팔구 부부관계의 틀을 깨는 정상적이지 않는 '별거'로 간주하고 결과도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기러기 생활이 자신의 경제적·정신적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면 과감한 결단으로 청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기러기 아빠들은 정신적으로는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 두통 등의 증세를 보인다.

윤세창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는 "기러기 아빠의 정신적 문제는 '남성판 화병'"이라며 "과거 여성들이 시집살이와 자녀 양육 등 자기 희생을 감수하며 겪었던 고통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배우자의 외도, 가족 해체로 이어져

기러기 아빠 문제는 주로 한국에 남아 있는 아빠들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배우자와의 관계 소원, 외도, 이혼으로 이어지고 있어 더 심각하다.

유범희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는 "해외 유학간 어린이가 외국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경우는 절반이 채 못 된다는 보고가 있다"며 "이럴 경우 기러기 아빠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데 충분한 보상이 없다고 생각하고 아내 입장에서는 외국에서 아이 돌보기도 힘든데 남편이 불평 불만만 늘어놓는다고 화를 내면서 부부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에서 외도를 하고 부인은 남편보다는 아이 뒷바라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가부장적 한국사회로부터 벗어난 해방감을 지속하고 싶어 귀국을 기피, 부부가 파경을 맞는 경우가 생긴다.

김병후 부부클리닉후 원장은 기러기 부부는 △외국으로 떠나기 전부터 부부간 갈등이 심한 경우가 의외로 많고 △자식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지나친 데다 △자녀가 국내에서 공부 못하는 창피스러움을 회피하고 혹시나 외국에 나가면 나아질까 하는 막연함 기대감에서 외국행을 택한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부부는 자녀와 함께 외국으로 떠나기 전에 서로 신뢰가 튼튼한지, 자녀의 미래에 유학이 절실하게 필요한지 점검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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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러기 아빠 건강수칙

1.하루 한 번 전화나 인터넷으로 대화를 나눈다

2.편지나 메일로 전화로 못한 이야기를 전한다

3.규칙적으로 균형있는 식사를 한다

4.취미활동 모임에 참여해 외로움을 해소한다

5.주 3회 이상 규칙적으로 운동한다

6.출근 및 귀가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7.지나친 음주 흡연 폭식을 삼간다

8.아내의 잔소리를 보약으로 여긴다

9.자녀에게 투자한 만큼 나에게도 쓴다

10.혼자가 아니며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