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밀지를 품은 의정부참찬 이상설은 울분을 참을 길이 없었다. 1907년 4
[취재수첩]

기업에 맡긴 항일유적 보존

입력 2018-09-12 18:25:30 수정 2018-09-13 00:08:40
박동휘 정치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
고종의 밀지를 품은 의정부참찬 이상설은 울분을 참을 길이 없었다. 1907년 4월 한양을 떠나 6월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도착했지만 일제의 방해로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던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분한 마음으로 정신이 아득할 지경이었다. 부사로 그를 수행한 이준은 7월14일 자결을 택했다.

죽음의 길을 따르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그는 다른 선택을 했다. 통역을 맡은 이위종 등 특사단을 이끌고 유럽을 떠돌며 일제의 만행을 알렸다. 러시아 연해주 일대를 근거지 삼아 무장독립운동을 펼친 이상설 선생의 얘기다.

그는 1917년 우수리스크에서 분사했다. 억울함과 수치 때문이었는지 모든 기록을 지우고, 아무것도 남기지 말라고 했다. 러시아 극동 제2의 도시인 우수리스크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달리면 나오는 시골마을 라즈돌라니야는 이상설 선생에 관한 거의 유일한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는 생전에 유해를 강에 뿌려 달라고 했다. 광복회와 고려학술재단 등이 장소를 찾아내 러시아 정부의 협조를 얻어 2001년 10월 ‘이상설 유허비’를 세웠다.

얼마 전 현지에 진출한 기업인들과 함께 유허비를 찾았다. 유해가 뿌려졌을 수이푼강(江)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100여 년 전의 비극을 알 리 없는 현지 젊은이들에겐 고즈넉한 캠핑 명소다. 그런 탓인지 곳곳에 쓰레기가 나뒹굴었다. 동행한 기업인은 “1주일에 한 번씩 자원봉사조를 만들어 치우긴 하는데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이상설 유허비 외에도 러시아 연해주는 항일독립운동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중국 훈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크라스키노(옛 연추)에서 안중근 의사는 거사에 앞서 단지(斷指)를 감행했다. 최초의 한인정착촌인 지신허 마을도 이곳에 있다. 방치되다시피 했던 단지동맹비는 남양알로에라는 현지 진출 기업이 꾸준히 관리한 덕분에 요즘엔 관광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신허엔 대중가수 서태지가 기념비를 세웠는데 그 땅이 사유지로 편입돼 지금은 출입조차 불가하다. 정부의 신북방정책이 한창이다. 민간의 자원봉사에만 기댈 게 아니라 정부도 기억의 보존에 신경 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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