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진기 작가, 부장판사 출신의 한국 추리소설 大家
“셜록 홈스나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은 왜 100년이 지나도 계속 읽힐까요. 사회 문제를 섣불리 건드리기보다 범인을 밝혀내는 추리소설 본연의 목적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저도 그런 추리소설을 쓰고 싶어요. 오래도록 살아남을 작품을요.”

도진기 작가(55·사진)가 2010년 마흔세 살의 나이로 한국 추리소설계에 혜성처럼 나타났을 때 그는 ‘추리소설 쓰는 판사’로 화제가 됐다. 많은 이가 ‘한때의 일탈’로 생각했다. 곧 잊힐 작가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판사로 일하면서 주말마다 틈틈이 글을 썼다. 그렇게 낸 장편소설이 10여 권이다.

그는 이제 한국에서 가장 추리소설을 잘 쓰는 작가로 꼽힌다. 2017년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도 작가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 네이버 웹소설에 연재한 <복수 법률 사무소>를 단행본으로 펴냈다.

“동료 작가가 ‘웹소설 안 쓰고 뭐 하냐’고 강력하게 권해 쓰게 됐습니다. 그전에는 웹소설이란 존재 자체를 몰랐어요. 한동안 성장하는 느낌이 없었는데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싶었죠. 새로운 도전에 신이 났고 의욕이 충만했습니다.”

이 소설을 읽은 이들은 웹소설 같지 않다는 평도 내놓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그때 글을 써 연재한 게 아니라 4개월에 걸쳐 책 세 권 분량의 원고를 써놓고 나눠 올리는 식으로 연재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침 변호사 사무실에 사건이 없어 몰아서 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웹소설이 자신의 취향에 잘 맞았다고 했다. 도 작가는 “현학적이고 알쏭달쏭한 소설보다는 직관적인 소설이 좋다”며 “배경 묘사를 생략하고 바로 사건에 집중할 수 있는 건 웹소설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다만 당분간 웹소설을 다시 쓸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독자 평점 9.9점을 달성했지만 조회수는 기대에 못 미쳤다.

도 작가가 판사를 하다 추리소설을 쓰게 된 것은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는 일본 추리소설 때문이었다. “일본이 추리소설 선진국이고, 굉장한 작품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수준 이하의 작품이 덩달아 들어오는 게 불만이었죠.”

그렇게 탄생한 그의 대표 작품이 셜록 홈스를 닮은 변호사 고진이 등장하는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와 백수 탐정 진구를 내세운 ‘진구 시리즈’다. 사실적이면서 탄탄한 구성과 잘 짜인 트릭으로 추리소설 마니아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그의 작품이 영상화가 잘 안되는 이유는 복잡한 트릭에다 ‘안락의자 탐정’처럼 액션보다는 추리에 방점을 둔 데 있다. 그는 “<유다의 별>은 어려운 트릭만 빼면 금방 영상화될 것 같았다”며 “그래도 본격 추리물인데 트릭이 허술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원래 구성을 밀고 나갔다”고 설명했다. 대신 라디오 드라마로는 활발히 만들어지고 있다.

사회 문제를 소설 속에 끌어들이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도 작가는 “사회 문제를 엮어서 쓰면 당대에는 인기를 끌겠지만 시대가 바뀌면 존재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고 했다.

다음 작품은 과학소설(SF) 추리물이 될 예정이다. 그는 “인공지능 세상 등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