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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떼 칼럼] 12월의 아쉬움 달래는 예술 송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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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그림 고르며 마무리하면
    찬란히 발화할 새해 찾아와

    임지영 예술 칼럼니스트·즐거운예감 대표
    [아르떼 칼럼] 12월의 아쉬움 달래는 예술 송년회
    단풍도 꽃 같아서 화려한 절정이 지나면 추레하니 쓸쓸함만 남는다. 세상 모든 발화는 한때다. 얼마 전 덕수궁 현대미술관에 다녀왔는데, 제때를 지난 단풍의 분분한 낙화를 마주했다. 동행한 선생님이 없었다면 여러 번 소리 내어 탄식했을 것이다.

    지금 열리고 있는 ‘향수, 고향을 그리다’ 전시는 근대 작가들의 다양한 그림으로 구성돼 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근현대 미술에 담긴 고향의 역사를 아울렀다고 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사무치는 그리움도 없고 시골 풍경도 낯선데, 향수는 구체가 아니라 관념이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 연령대가 높았다. 어쩌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그런데 전시를 보며 시대를 건너 시시각각 다가오는 그림들에 뭉클해졌다. 익숙하고 유명한 작가의 작품도 좋았지만, 낯선 작가들의 독특한 작품을 발견해 더 좋았다. 어려운 시절이었을 텐데 그림마다 자기만의 화풍을 추구한 결기도 느껴졌다. 동행한 선생님께 미션을 드렸다. 그냥 감탄하지 마시고, 나의 과거의 한 장면과 닮은 그림을 찾아보세요!

    그러고는 나도 2025년을 정리하는 그림 한 점을 골라보기로 마음먹었다. 올해 어떠했더라. 세상은 출렁거렸고 사람들도 어딘가 내내 불안했다. 정치와 소문은 멀수록 좋다고 했는데 어딜 가나 세상의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마음은 간절히 평화를 바랐다.

    향수와 고향이 키워드여서 따뜻한 그림 일색일 줄 알았더니, 우리의 아픈 근대사가 다 들어 있다. 일제 강점기, 전쟁, 이념 갈등, 그럼에도 계속되어 온 우리의 삶, 사랑, 그리움. 이제 아픈 것들은 예술이 되고 역사가 됐다. 몇몇 작품은 너무 먹먹해서 한동안 그림 앞에서 떠나지 못했다.

    전시 관람이 끝나고 동행한 선생님이 휴대폰으로 찍은 그림 사진을 넌지시 보여줬다. 한 소년이 나무에 기대어 피리를 불고 있다. 폐허가 된 곳에서 울려 퍼지는 피리 소리는 쓸쓸하고 처연하기 그지없다. 박돈 작가의 ‘성지’였다. “이 그림 속 아이가 꼭 나 같아요. 부끄럼 많고 몸도 약해서 늘 혼자 지냈거든요. 그때 꼭 이랬어요. 이렇게 그림으로 나를 돌아보니까 정말 신기하고 좋네요.” 그림으로 두어시간 수다를 잔뜩 떨었다. 우리는 말해야 한다. 유년의 불안과 청소년기의 슬픔, 청년의 실패와 중년의 미완까지, 솔직하게 나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2025년의 그림으로 윤중식 작가의 ‘평화’를 골랐다. ‘환희’라는 작품과 나란히 전시돼 있었는데, 올해 내내 그 생각을 하며 지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복잡한 와중에도 2025년에 생의 환희를 붙잡은 순간이 많았다. 양천중앙도서관에서 한 장애인을 위한 예술 수업이 그랬다. 예술을 통해 수많은 어린이와 선생님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마음에는 가만히 평화가 깃들었고 더는 흔들리지 않게 됐다. 환희와 평화 앞에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올 한 해 애쓴 내게 보내는 그림의 다정한 위로.

    하여 완벽한 송년을 보내는 이 방법을 강력 추천해 드리고 싶다. 어디든 편한 마음으로 미술관에 가시면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올해의 그림 한 점을 고르는 거다. 힘들면 힘든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애썼다면 애쓴 대로, 그림으로 올해를 정리하는 거다. 더불어 올해의 책 한 권, 음악 한 곡을 골라보는 것도 좋다. 내가 고른 그들을 통해 나의 1년, 나의 삶이 의미로 남을 것이다. 그리 잘 정리하고 새해로 넘어간다면 발화의 시간은 다시 찾아올지니, 송년의 공허쯤 능히 견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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