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건서의 은퇴사용설명서] '왕년에'라는 단어는 내 사전에서 지우자
좋은 말도 자주 들으면 지겹다고 하는데, 만날 때마다 ‘왕년에’를 녹음기처럼 튼다면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지나온 과거는 이미 흘러간 물에 불과함에도 현재의 공허함을 왕년에 어쩌고 하면서 떠드는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니다. 특히 시골살이를 하면서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는 가급적 삼가는 것이 좋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왕년에’라는 말이 나오면 싫증을 느끼는데, 하물며 시골살이를 하면서 다른 사람의 ‘왕년에’를 듣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우리의 인생은 과거-현재-미래가 연결돼 있는 복합체이다. 과거는 좋은 기억과 함께 자신을 반성하는 역사이므로 현재와 미래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괜한 자랑 질은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대신 우리는 현재의 삶에 도움이 되거나, 미래의 삶을 준비하는 희망적인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없고, 오늘과 똑같은 내일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과거라는 틀에 묶여 삶을 스스로 제한하고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옛날 방식으로 대응하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잘못을 하기도 한다.
인생은 한번밖에 살지 못하는 일방통행(One way trip)이며, 왕복승차권을 발행하지 않는다. 과거는 과거일 뿐, 매 순간이 새롭고 특별한 순간이며 소중한 지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의 내 인생, 그리고 미래의 내 꿈이 무엇인지 얘기하는 게 더 생산적이다. 공자는 전심전력으로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것이 공경(恭敬)의 참뜻이라고 했다. 나를 공경하고 지금 늦게 간다고 비관하지 말고, 앞서간다고 자만하지 않아야 한다. 인생의 종착역에 도착할 때까지는 아무 것도 끝난 게 아니다. 인생은 관 뚜껑을 덮은 다음에 평가할 수 있다. 우리의 눈은 멀리 바라보고 발은 땅을 딛고 있어야 한다. 미래를 꿈꾸는 동시에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이중의 삶이 요구된다. 즉, 현실이 힘들어도 꿈을 잃지 않는 것과 지금 이 순간을 치열하게 살면서도 꿈을 바라보는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 인생은 내가 길을 만들어나가는 정글이기에 길을 잃고 헤맬 수 있다. 하지만 꿈이 분명하다면 금세 길이 찾아진다. 인생의 마지막 날을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또한 내일을 미리 당겨쓰지도 말고, 하루하루를 즐겁게 산다면 의미 있는 인생이 만들어진다. 과거의 나를 과감히 버리고 현재와 미래의 나를 예쁘게 만들어가자.
괴테(Goethe)의 처세훈에 즐거운 생활을 하려면 지나간 일에 투덜거리지 말 것, 좀처럼 성내지 말 것, 언제나 현재를 즐길 것, 남을 미워하지 말 것이라고 했다. 첫째는 잊어버려야 할 것은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미래를 바라보고, 둘째는 분노 속에서 한 말이나 행동은 후회만 남으니 분노의 노예가 되지 말고, 셋째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즐기고 그 일에 열정을 다하고, 증오는 인간을 비열하게 만들고 인격을 타락시키니 넓은 아량을 갖고 남을 포용하라는 뜻이다. 이제부터 ‘왕년에’라는 단어를 내 사전에서 지우고 ‘앞으로’ 라는 단어를 사용하자.
<한경닷컴 The Lifeist> 구건서 심심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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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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