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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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졌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다들 뛰어들길래 덩달아 물에 들어간 것과 가슴을 세게 압박해 깨어났던 게 전부다.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집에서 2킬로쯤 떨어진 시냇물을 시멘트 공장이 용수를 얻으려고 보로 막아 생긴 큰 물웅덩이였다. 제법 큰 아이들은 거기서 멱을 감는다고 해 따라갔다가 속절없이 물에 빠졌던 거다. 마침 외진 길을 지나던 어른이 바로 물에 두 번이나 뛰어들어 바닥에 가라앉은 나를 발로 더듬어 찾아내 살렸다. 깨어난 걸 확인한 그 어른은 자전거 뒤 짐받이에 나를 엎어 싣고 집에 왔다. 같이 간 애들은 뜀박질해 모두 뒤따랐다.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있었다. 어른이 나를 내려놓자 아버지는 큰소리로 야단치며 손으로 머리를 때렸고 나는 기절했다. 깨어났을 때 어머니는 들기름을 입에 넣어주던 숟가락을 팽개치고 나를 엎어 등을 세게 두드렸다. 기름과 물을 모래와 함께 계속 쏟아냈다. 내 기억은 단편적이지만, 모두 지켜본 애들 입을 통해 재구성하기는 어렵지 않아 지금도 생생하다. 그날 밤 잠들었을 때 누군가 머리를 만지는 거 같았지만 눈이 떠지지 않았으나 아버지의 역한 담배 냄새가 났던 기억은 지금도 새롭다.

며칠 지나 물에 빠진 나를 구해준 그 어른이 집에 찾아왔다. 괜찮냐고 내게 두 번이나 물어보셨다. 부모님은 생명의 은인이라며 가겠다는 그 어른을 붙잡아 극진하게 대접했다. 그날 밤에 아버지가 말씀 중에 예외 없이 인용한 고사성어가 ‘송인송도저(送人送到邸)’다. 아버지는 “‘남을 바래다주려면 집 앞까지 데려다줘라’라는 말이다. 너를 구해주고 그 후 괜찮은지 일부러 들러 찾아준 아저씨처럼 남을 도와주려면 끝까지 돌봐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 후에도 저 성어를 여러 차례 말씀하셔서 똑똑히 기억나지만 뚜렷한 고사는 찾지 못했다, 어디서 아셨는지 그때 여쭤보지 못한 게 후회된다. 중국인들은 ‘송인송도가(送人送到家)’로 속담처럼 쓰는 말이라고 한다. 그렇게 송인송도저는 내게 아버지의 고사성어가 됐다.

집에는 언제나 아버지 손님이 들끓었다. 매일 사람들이 아버지를 찾아왔다. 모두 부탁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다친 애를 치료해달라는 일부터 송사에 이르기까지 부탁은 다양했다. 남의 일인데도 내 일처럼 맡아 해주신 일은 지금 와 생각하면 모두 변호사법 위반인 일이다. 남동생과 함께 쓰는 방에 둘만 잤던 기억이 없을 만큼 자고 가는 사람도 많았다. 남의 일을 봐주는 일이 일상이다 보니 어머니와 다투는 일이 빈번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오죽했으면 나를 찾아왔겠느냐. 물에 빠진 사람을 그냥 보고 지나치는 게 아니다”며 그 고사성어를 인용했다. 아버지는 내게 지시하거나 용품을 사준 뒤 반드시 점검했다. 그 후 한참 지나서도 일이 잘 돼가는지, 사준 물건은 잘 쓰는지를 꼭 물어봤다. 상을 치른 집이나 다친 이를 치료해준 집에는 한참 지나 반드시 들러보곤 했다.

직장 다닐 때 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모시고 호텔에서 저녁을 같이했다. 화장실에 들어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아 가보니 손 닦은 수건으로 세면대를 닦고 계셨다. 청소하는 분이 할 일이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내가 저지른 일은 내가 마무리해야 한다. 하찮은 일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가 이렇게 조금만 부지런하면 다음에 오는 사람은 깨끗한 세면대에서 손 씻을 수 있을 거 아니냐”고 했다.

남의 일도 내 일처럼 여기는 일은 감정이입에서 온다. 감정이입은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뜻한다. 남의 딱한 사정을 보고 동정심을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감정이입은 다른 이의 느낌과 생각을 내 것처럼 받아들여 상대를 배려하는 구체적 행동으로 이끈다. 아버지는 매번 “그런 마음으로 한 내 행동이 내 맘을 편하게 해주고 다른 일에도 영향을 준다”라고 했다. 내가 겪으며 따라 한 일 중에서 지키기 가장 어려운 게 배려심이다. 다른 일도 모두 그렇지만 하고 나면 그만큼 쉬운 일도 없다. 손주에게 꼭 물려주고 싶은 심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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