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내용을 정확하게 계약서에 담아두는 작업만큼 부동산거래에서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계약서작성에 매우 소홀한 것이 현실이다.

다음에서 소개할 울산지방법원 2014. 1. 29.선고 2013나508 소유권이전등기 판결은, 정식 매매계약서형식으로 작성되지 못한 채 “약정서”라는 제목으로 간략한 내용으로 만들어진 합의가 매매계약으로서의 효력이 있는 것인지, 효력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효력을 가질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되었는데, 계약의 일반적인 해석원칙에 부합하여 제목에 국한하지 않고 체결된 경위, 계약의 내용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는 방법을 통해, 약정서의 효력으로 피고에게 원고에 대한 이전등기의무를 인정하였다. 종종 “가계약”이라는 형식으로 섣불리 계약서를 작성하는 관행, 이런 문서형식도 아예 갖추지 못한 채 일부 대금만 먼저 입금하는 식의 그릇된 거래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1. 기초사실
가. 피고는 1978. 6. 7. 울산 00군 00면 산00 임야 30,744㎡(이하 ‘이 사건 임야’라 한다)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고 이를 소유하여 오던 중 이 사건 임야를 타에 매도하기 위하여 여러 중개업자를 통하여 매수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나. 피고의 임원들은 신00의 중개로 이00에게 이 사건 임야를 평당 8만 원에 파는 것에 대하여 논의한 적도 있었는데, 이xx이 소개한 원고가 이 사건 임야를 평당 85,000원에 매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피고의 임원들은 위 임야를 평당 85,000원에 매도하기로 의결하였다.
다. 이에 매수인인 원고의 대리인 이##, 중개업자인 이xx, 매도인인 피고의 회장 김00, 총무 김$$는 2012. 3. 18. 이xx의 00부동산 사무실에서 ‘이 사건 임야 총 9,300평 중 집단묘지시설(하단 약 2,400평, 상단 약 900평)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약 6,000평)을 평당 85,000원에 매매’하는 문제를 논의하였다.
라. 이##, 이xx, 김00, 김$$, 피고의 전회장인 김&&은 다음날인 2012. 3. 19. 00부동산에 다시 모여 다음과 같은 내용의 약정서(갑3호증, 이하 ‘이 사건 약정서’라 한다)를 작성하였는데, 그 뒤에는 도면(기록 20면)이 첨부되어 있다.

- 약 정 서 -
이 사건 임야를 매매함에 있어서 매도인(피고)과 매수인(원고)은 다음과 같이 약정한다.
1. 매매금액: 평당 85,000원
2. 매매면적: 하단부 및 상단부 집단묘지시설을 뺀 약 육천 평을 매매키로 한다
3. 대금지불방법: 매매금액 510,000,000원. 계약금 60,000,000원. 계약금 지급일로부터 30일 내 중도금 340,000,000원 지급. 잔금 110,000,000원은 중도금 지급일 이후 묘지이장완료시 지급.
4. 지장물: 매매대상면적내의 묘지는 매도인이 이장 처리한다.
5. 토지분할측량비: 매도인이 부담한다.
6. 본 약정 후 2012. 3. 23. 이내 매매계약 체결이 이행되어야 하며 쌍방 합의시 본 약정을 매매계약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7. 문중묘는 하단 집단묘역으로 이장하고, 무연고묘는 법적 처리하여 이장 처리하며 북쪽 상단부 묘 중 이장이 어려운 묘가 있을시 그 부분은 분할하여 매매면적에서 제외시킨다.
8. 묘역 부분 및 집단도로 부분 분할로 인하여 매매계약 면적이 약간의 변동이 있을 수 있음.

마. 원고의 대리인인 이##은 이 사건 약정서 작성 당시인 2012. 3. 19.에는 계약금을 지급하지 아니하였고, 피고와의 협의를 거쳐 나흘 후인 2012. 3. 23.까지 계약금 6,0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바. 그런데 이 사건 약정서 작성 직후 **부동산을 운영하는 신00이 피고의 회장 김00 등을 찾아와 이 사건 약정서를 살펴본 후 ‘원고가 2012. 3. 23.까지 계약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거냐. 이 사건 약정서는 별다른 효력이 없다’는 등으로 이야기하면서 ‘이00이 더 좋은 조건으로 매수하려고 하니 이00과 매매계약을 체결하라’고 권유하였다.
사. 이에 피고의 회장 김00은 2012. 3. 19. 이00과 이 사건 약정서를 토대로 일부 내용만 약간 변경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매매계약서(을1호증)을 작성하였다.

- 매매계약서 -
이 사건 임야를 매매함에 있어서 매도인(피고)과 매수인(이00)은 다음과 같이 계약한다.
1. 매매금액: 평당 85,000원
2. 매매면적: 상, 하단부 집단묘지시설을 뺀 약 육천 평을 매매키로 한다
3. 대금지불방법: 매매금액 510,000,000원(계약금 50,000,000원, 중도금 50,000,000원은 당일 지급하고 영수함, 잔금 410,000,000원은 묘지이장완료시 지급하되, 4. 30.을 한도로 한다)
4. 지장물: 매매대상면적내의 묘지는 매도인이 이장 처리한다.
5. 토지분할측량비: 매도인이 부담한다.
6. 문중묘는 하단 집단묘역으로 이장하고, 무연고묘는 법적 처리하여 이장 처리하며 북쪽 상단부 묘 중 이장이 어려운 묘가 있을시 그 부분은 분할하여 매매면적에서 제외시킨다.
7. 묘지부분 분할시 매매대상 면적이 약간의 오차는 발생할 수 있다.
상단부 묘지 이장 관계도 매입자가 처리하고 등기분할시 포함시킨다.

아. 이00은 위 매매계약서 작성 당일 피고에게 1억 원을 송금하였다.
자. 원고 측은 2012. 3. 23. 금요일 오후에 00부동산에 계약금 6,000만 원을 현금으로 가져와 이를 피고에게 지급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피고의 회장인 김00은 중개업자인 이xx으로부터 ‘계약금이 마련되었으니 받으러 00부동산에 나오라’는 연락을 수차례 받고도 저녁까지(은행영업시간 이후까지) 00부동산에 나오지 않았고, 이에 원고는 2012. 3. 26. 월요일 아침에 은행을 방문하여 피고의 계좌로 계약금 6,000만 원을 송금하였다.
차. 원고는 2012. 4. 9. 피고의 계좌로 중도금 3억 4,000만 원을 다시 송금하였다.
[인정근거] 다툼없는 사실, 갑1 내지 7호증, 을1 내지 4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제1심 증인 이xx, 김&&, 당심 증인 신00의 각 증언, 변론의 전제의 취지

2. 당사자들의 주장
가. 원고의 주장
원고와 피고 사이의 이 사건 약정서는 단순한 협의서가 아니라 원고 및 피고에게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매매계약이므로, 피고는 원고로부터 위 매매계약상 잔금을 지급받음과 동시에 원고에게 매매계약의 목적물인 청구취지 기재 토지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
나. 피고의 주장
원고와 피고 사이의 이 사건 약정서는 장차 매매계약 체결에 대비하여 매매조건만을 미리 협의하여 적어놓은 것일 뿐 확정적인 매매계약이 아니고, 또한, 위 약정서는 매매예약으로 볼 수도 없는바, 이 사건 약정서는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다.

3. 판단
가. 이 사건 약정서의 법적 성질
실거래계에 있어서는 정식의 계약체결에 이르기 전에 당사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합의들이 흔히 속칭 ‘가계약’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가계약의 내용은 구속력의 정도나 규정하는 내용에 있어 매우 다양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 그 법적 성질과 효과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으나,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의사표시의 해석을 통하여 나타나는 당사자들의 의사라 할 것인데, ① 본계약과 그 실질에 있어 아무 차이가 없는 계약이거나 또는 조건부계약인 경우(조건의 성취 및 불성취에 따라 자동적으로 효력이 발생 혹은 불발생), ② 장래에 일방 또는 쌍방에게 본계약 체결의 의무를 지우는 예약의 성격을 갖는 경우, ③ 장차 계속되는 교섭의 기초로서 작성한 것이고 장래의 교섭에 의하여 수정될 것이 예정된 협의사항의 성격을 갖는 경우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앞서 본 증거 및 인정사실에 의하면, ㉮ 이 사건 약정서에서는 ‘본 약정 후 2012. 3. 23. 이내 매매계약 체결이 이행되어야 하며 쌍방 합의시 본 약정을 매매계약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는 조항을 두고 있는 점, ㉯ 위 조항이 기재되게 된 것은, 이 사건 약정서 작성 당시 매수인인 원고 측에서 “이 사건 임야의 매매목적물 부분에 있는 분묘의 개수가 피고 측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지를 한 번 더 확인하고 계약금을 지급하겠으니 이를 확인해 볼 때까지 정식매매계약 체결을 다소 연기하자”고 요구하였기 때문인 점, ㉰ 위 조항을 제외하고는 이 사건 약정서에서는 매매목적물, 매매대금의 액수와 그 지급시기, 매매와 부수한 쌍방의 권리와 의무 등을 확정적으로 혹은 확정 가능하도록 정하고 있어서, 위 약정서 작성 당시 동일한 내용으로 본계약을 체결하더라도 그 이행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도 피고와 이00은 같은날 위 약정서와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던 점, ㉱ 피고의 전회장 김&&은 제1심에서 “이 사건 약정서를 작성할 때 처음에는 위 약정서가 매매계약서와 다르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것으로 매매계약이 체결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원고 측에서 그 날 계약금을 주지 않고 4일 후인 2012. 3. 23.까지 주겠다고 하자 그 점이 다소 불안하고 당황스러웠던 차에, 약정서를 작성하고 원고 측과 헤어진 이후 신00 등이 ‘원고가 2012. 3. 23.까지 계약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어쩔 거냐’는 등으로 이야기하자 마음이 흔들려 이00과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고 증언한점, ㉲ 피고도 이 사건 약정서가 법률적 효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점(당심 증인 신00의 증언), ㉳ 이 사건 약정서 작성 당시 참석하고 있었던 피고의 총무 김$$는 원고 측에게 피고의 계좌번호를 가르쳐주었고, 원고는 위 계좌번호로 계약금과 중도금을 송금한 점 등의 여러 사정을 인정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약정서상 “2012. 3. 23. 이내 매매계약 체결이 이행되어야 하며 쌍방 합의시 본 약정을 매매계약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는 조항은 원고가 피고에게 계약금을 지급할 때까지 4일의 말미를 가진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서 기재한 조항으로서, 그 진정한 의미는 이 사건 약정서가 현재로서는 아무런 효력을 가지지 아니한다는 것이 아니라, 원고로 하여금 매매목적물을 다시금 확인할 여유를 주면서 원고에게 정식계약을 체결할지 여부에 대하여 선택권을 부여하는 데 있다고 판단되므로, 원고에게는 위 약정서에 기하여 정식계약(본계약)을 성립시킬 권리가 유보되어 있었음에 반하여 피고로서는 위 약정의 구속력에서 마음대로 벗어날 수는 없는 상태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그렇다면, 이 사건 약정서는 원고가 피고에게 계약금을 지급하면서 예약완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형태의 매매예약이라고 할 것이다[이 사건 약정서는 장래 매매계약 체결에 대비하여 조건만을 미리 협의한 것이라는 취지의 피고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또 피고는 원고만이 매매완결권을 가지는 것은 피고에게 불공평하므로 (쌍무)계약의 기본원리에 반한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당사자들의 자율적인 의사에 따라 당사자의 일방만이 매매완결권을 가지도록 정하는 것은 사적자치의 원칙상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므로, 피고의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 매매계약의 성립
(1) 매매의 일방예약에 있어서 예약완결권은 형성권이므로 예약완결권자가 예약완결의 의사표시를 하게 되면 그 때 계약이 성립하는 것인바, 원고가 2012. 3. 23. 피고에게 약정서에 따른 예약완결의 의사를 표시하여 그 무렵 피고에 그 의사가 도달하였고, 또한, 원고는 피고에게 2012. 3. 23. 계약금지급의무의 이행제공을 하였다가 2012. 3. 26. 현실지급까지 마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원고의 위와 같은 예약완결권 행사 및 계약금 지급으로 인하여 그 무렵 원고와 피고 사이에 본계약이 적법하게 성립하였다[한편 피고는 이 사건 약정이 법적구속력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2012. 3. 19. 원고 대리인이었던 이##과 이 사건 약정을 한 후 같은 날 이00과 다시 매매계약을 체결한 다음 원고 측 중개인을 통해 원고로부터 계약금을 받은 것도 아니고 다른 매수인이 있어 이 사건 약정을 해제한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고 주장하나(2012. 6. 21.자 답변서),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뿐만 아니라 계약(예약 포함)이 일단 성립한 후에는 당사자 일방이 이를 마음대로 해제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므로 원고가 계약금을 아직 지급하지 아니한 단계였다고 할지라도 피고로서는 원고가 계약금을 약정대로 지급하지 않으면 비로소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금약정을 해제하거나, 나아가 계약금약정이 없었더라면 주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정이 인정된다면 주계약도 해제할 수도 있는 것에 불과한 지위에 있었을 뿐이므로(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7다73611 판결 등 참조), 피고의 해제 주장은 이유 없다. 한편 갑6호증의 기재 및 제1심 증인 이xx, 당심 증인 신00의 각 증언에 의하더라도 이00 측 중개인이었던 신00은 피고 측에게 ‘원고와의 이 사건 약정은 2012. 3. 23.까지 원고로부터 계약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고 설명한 다음 피고와 이00이 다시 매매계약을 체결하면서 이00 측 중개인이었던 신00이 원고 측 중개인이었던 이xx에게 이00과의 매매계약사실을 알려주기로 하였음에도 신00은 이xx에게 위 매매계약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채 피고에게 ‘(원고가) 계약금을 넣으면 연락이 올 것이니 그때 이xx에게 이야기하라’고 말하였다는 것인바, 이에 비추어 보면 신00은 원고가 피고에게 2012. 3. 26. 계약금 6,000만 원을 지급할 때까지도 이00과의 매매계약사실을 원고나 그 중개인 이xx에게 통지하지 않은 채 피고가 원고로부터의 계약금 수령을 회피함으로써 이 사건 약정의 효력이 상실되도록 의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2) 나아가, 앞서 본 각 증거 및 인정사실에다가 당심 감정인 대한지적공사의 측량감정결과를 더하여 보면, 이 사건 약정에 따른 본계약의 목적물은 이 사건 임야 중 별지1 도면 표시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7의 각 점을 순차로 연결한 선내 ‘나’ 부분(이하 ‘이 사건 계쟁부분’이라 한다) 19,835㎡(6,000평)이라고 봄이 상당하고, 위 목적물에 대한 매매대금은 5억 1,000만 원(=6,000평 × 85,000원)이다.
(3) 한편, 원고가 피고에게 이미 매매대금 중 4억 원(=계약금 6,000만 원 + 중도금 3억 4,000만 원)을 지급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결국, 피고는 원고로부터 나머지 잔금 1억 1,000만 원(=5억 1,000만 원 - 4억 원)을 지급받음과 동시에 원고에게 이 사건 계쟁부분에 관하여 2012. 3. 26. 매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


※ 칼럼에서 인용된 판결의 전문은 최광석 변호사의 홈페이지인 www.lawtis.com 에서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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