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수칼럼] "돈이 있어야 형제지!"
“아침 댓바람에 막내시누이가 찾아왔어. 미리 전화나 문자도 없이. 아무리 오빠네 집이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어휴, 많이 놀랐겠어요!”

“모처럼 휴일에 늦잠자고 싶었거든. 정말 웃기는 건 아침 여섯 시에 온 이유야.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양평별장 가는 길에 들렀대!”

“에고. 그건 좀 아니네.”

절친한 언니가 뿔났다. 아주 많이! 이런 날은 화난 언니 말을 들어 주고 싶다. 언니가 전부 말하고 나면 한결 마음이 누그러질 것이다. 가끔은 말을 하기보다 듣고만 있어도 좋다. 계속 언니 이야기다.

“여태 연락 없다가 사업이 잘 되서 이 불경기에 빌딩사고 별장 짓고 어찌나 자랑을 하는지. 오빠가 요새 힘든지 알면서! 자랑할거면 동네슈퍼에서 귤 한 봉지 사옴 좀 좋아. 근데 오늘 심는 소나무가 한 그루에 오천 만원이라고.”

“동생이 너무했네요. 그 시간에 와서 할 얘기도 아니고. 그나저나 아침 식사는 어떻게 하셨어요?”

“집 앞 24시 설렁탕집에 갔어. 설렁탕 값도 내가 냈어!”

“호호호. 까르르르”

“내가 이번에 절실히 느꼈다니까! 돈이 있어야 형제야!”

“음…”

언니는 예전에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 지금은 수입이 많이 줄었지만 자녀들이 다 컸고 그럭저럭 살고 있다. 언니는 돈을 잘 벌 때 시댁 식구를 많이 도왔다. 당시 형제자매들이 언니부부를 매우 의지했었다. 그런데 언니 말에 의하면 “나이 들고 전처럼 돈이 없으니, 동생들이 함부로 대해 약간 무시당하는 것”같단다.

그 놈(?)의 ‘돈’은 대체 무엇일까?

‘돈으로 열리지 않는 문은 없다.’

‘지옥에 굴러 떨어져도 돈만 있으면 살아 나온다.’(일본)

‘돈이 없으면 사람도 아니다’(이탈리아)

‘가벼운 주머니는 마음을 무겁게 한다.’(영국)

‘세상에서 돈보다 더 사람의 사기를 꺾는 것은 없다.’

인터넷에 있는 ‘돈’ 관련 대표 속담과 격언을 찾아보았다. 대부분 매우 직선적이다. 그렇다보니 쉽게 공감되고 생각할수록 섬뜩한 느낌이다. 그만큼 돈이 자신 있어 보인다. 감히, 사람 앞에 거만하고 당당해 보이니 말이다.

한 남자가 한 여인을 결혼해달라며 쫓아다녔다. 여인은 남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백일 동안 꽃을 들고 여인의 집 앞에 서있길 요구했다. 그리고 백 일이 되었다.

남자는 백일을 꼬박 서 있었다. 여인은 감동했고 남자를 뒤에서 꼭 껴안았다. 그리고 흐느끼며 말했다. “당신과 결혼하겠어요!” 그러자 남자가 뒤돌아서며 말했다. “저기, 저는 알..바..생..인데요!”

사랑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필자는 4남매 중 맏딸이다. 맏딸이라고 딱히 잘하는 건 없지만 어깨가 무거운 것은 사실이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다보니 필자 삶에 친정엄마와 동생들이 우선순위 0순위였다. 그때부터 친정 일에 나서서 해결하고 수습했다. 그렇게 30년 가까이 흘렀다.

얼마 전 친정엄마가 무릎수술 받을 때 일이다. 정형외과 의사가 문진을 했다. “아, 어머니! 무릎을 보니 어머니 인생이 보이는군요.” 필자 이야기만 듣고 상태가 이 정도인줄 몰랐다고 덧붙였다. 그 말을 조용히 듣던 친정엄마는 처음 보는 의사 앞에서 한없이 무너졌다.

마흔에 혼자된 친정엄마는 억척스럽게 살았다. 4남매를 대학보내기 위해서였다. 사업이 망해 돌아가신 아버지는 빚만 남겼다. 그 빚을 다 갚고 팔렸던 땅을 하나씩 사들인 친정엄마다. 거의 땅을 기다시피 다니며 농사를 지었으니 두 무릎이 성할 수 없었다.

“너거(너희)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다!”

“너무너무 무섭다. 태어나서 처음 수술하려니 참말 죽겠다!”

“나는 이것이 애 낳기 보다 더 무섭다!”

생애 첫 입원과 수술을 앞두고 친정엄마가 꺼이꺼이 울었다. 억척스러워 겁 없어 보이던 친정엄마다. 이런 친정엄마에게 유일한 버팀목이 있는데 바로 ‘통장’이다. “내가 죽을 때,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증명해 줄 물건”이라며 늘 강조하던 통장을 남동생에게 맡겼으니 그 돈으로 수술비를 내라신다. 필자는 느꼈다. ‘그 돈을 쓰면 엄마가 더욱 힘들 것이다.’

남동생 둘은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고 여동생은 여력이 없었다.

“큰 동생아, 엄마 수술비 우리 셋이 각출하자.”

“누나, 엄마가 통장 동생한테 줬대! 그리고 누나, 엄마한테 논밭 전부 다 팔아 그 돈 갖고 앞으로 사시라고 했어!”

“작은 동생아, 엄마통장은 손대지 말고 우리가 수술비 모아서 내드리자.”

“누나, 엄마 돈 있는데 왜? 집사람도 통장 있는데 왜 그러냐고 하는데?”

친정엄마는 흔히 말하는 ‘옛날 사람’이다. 자식 앞에서 자기 마음을 직접 내보일 줄 모른다. 평생을 저 지경이 되도록 자식위해 살았지만 언제나 “더 못해주어서 미안하다”며 죄인처럼 당당하지 못했다. 특히 자기 몸에 들어가는 돈 앞에서 더욱 그랬다. 그런 엄마가 한번쯤은 자식이 나서서 자신을 돌봐주길 얼마나 기다렸을까! 하지만 아들들은 엄마 앞이 아닌 돈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야 말았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이 있다. 돈을 벌 때는 궂은일과 힘든 일이라도 하면서 벌고, 쓸 때는 떳떳하고 보람 있게 쓰라고 한다. 이 말을 곱씹어 생각하면 벌기보다 쓰기가 더 어렵다. 우리는 힘들게 번 돈을 어디에 주로 쓰고 있을까. 이를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포인트 즉 마일리지를 보면 된다. 포인트 적립 점수와 마일리지 점수가 어느 곳에 가장 많은 돈을 썼는지 명확히 알려주기 때문이다.

명절이면 평소보다 많은 돈을 쓴다. 선물과 용돈은 물론 음식에도 큰돈을 쓴다. 이럴 때만 돈 이야기가 나오면 좋은데 짓궂게도 명절 술자리에서 돈 잘 버는 사람이 대우 받고, 못 버는 사람은 눈치껏 비운 술잔을 채우는 일이 흔하다. 또는 부모님께 용돈을 많이 드리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잔일을 도맡아 하는 자식은 몸으로 때우기(?)도 한다. 명절 인사에 ‘어느 직장에 다니는지 묻는 것’도 알고 보면 결국 ‘돈’이야기다.

명절은 ‘해마다 일정하게 지켜 즐기거나 기념하는 때’다. 가족이 함께 즐기고 기념하는 날인만큼 자식 된 우리는 부모를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 “요즘 세상에 명절이 무슨 의미가 있냐!”지만 이 풍속을 지키고 기리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을지 말이다. 그 옛날, 없는 형편에 평생 쏟은 정성과 돈을 생각해야 한다. 또, 우리 부모들이 무작정 좋아서 한 게 아니었다. 이 땅에 태어나 그렇게 배우고 그대로 산 것이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돈 덕분에 살기도 하고 돈 때문에 죽기도 한다. 이러니 돈 앞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래도 어찌 부모 앞에서 <돈>을 우선할 수 있겠는가. 형제 앞에서 <돈>자랑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세상이 뒤집혀도 그들이 당신에게 쌓은 <가족>이라는 마일리지, 포인트를 그 돈으로 셈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단코!
[이지수칼럼] "돈이 있어야 형제지!"
남진의 ‘사람 나고 돈 났지’ 가사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이 났다더냐.

급하면 돌아가라 달이 있듯이

부귀영화 좋다지만 덤벼선 안 돼.

돈이란 돌고 돌아돌아 돌아가다가

누구나 한번쯤은 잡는다지만

허겁지겁 덤비다간 코만 깨지고

잡았다고 까불다는 서글어진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이 났다더냐!>

Ⓒ이지수20190202(jslee308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