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SK텔레콤이 충북 진천선수촌 안에 마련한 피스트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 이 경기장은 올림픽 경기장과 똑같은 환경으로 만들어졌다.  /SK텔레콤  제공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SK텔레콤이 충북 진천선수촌 안에 마련한 피스트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 이 경기장은 올림픽 경기장과 똑같은 환경으로 만들어졌다. /SK텔레콤 제공
지난 28일 2020 도쿄올림픽에서 금빛 낭보를 울린 한국 남자 사브르팀은 명실공히 세계 최강이다. 2012 런던올림픽에 이어 금메달 2연패를 이뤄냈다. 사브르와 함께 에페, 플뢰레 등에서도 한국 선수들의 활약이 이어지면서 한국 펜싱은 리우데자네이루에 이어 도쿄까지 3개 대회 연속 올림픽 펜싱장 시상대 꼭대기에 태극기를 올렸다.

유럽이 독식하던 펜싱을 한국이 정복한 바탕에는 ‘키다리아저씨’가 있었다. 아낌없는 지원을 이어온 SK텔레콤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펜싱 환경은 척박했다. 선수들은 연중 열리는 국제대회 중 절반 정도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선수들에겐 국제대회 경험이 곧 실력이 된다. 국제대회에서 경험을 쌓고 랭킹을 올려 이를 바탕으로 시드를 배정받기 때문이다.

최강 금빛 펜싱 뒤엔 '키다리 아저씨' SKT 있었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2003년. SK텔레콤이 대한펜싱협회 회장사를 맡으면서부터였다. 2003년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을 시작으로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신헌철 전 SK에너지 부회장을 거쳐 현재의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까지 SK그룹에서 대한펜싱협회장을 맡고 있다. 지금까지 SK텔레콤이 지원한 금액은 총 242억2000만원. 지난해에만 도쿄올림픽 준비를 위해 27억원을 썼다.

SK텔레콤은 우선 국가대표 선수 전원이 모든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선수들이 경기 환경에 익숙해지고 다른 나라 선수들과 자주 만나야 대응력과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시아선수권, 세계선수권대회를 한국에 유치하고 국제대회인 SK국제그랑프리대회를 신설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선수들의 몸과 마음도 함께 보듬었다. 런던올림픽 때부터 국가대표팀 지원을 위해 운영 중인 ‘드림팀’이 대표적이다. 드림팀에는 체력트레이너, 의무트레이너, 영상분석 전문가와 함께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박사급 인력이 참여해 심리 및 체력 강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선수들은 치열한 훈련과 전략·전술 개발로 화답했다. 키가 크지만 하체가 약해 손동작이 중심인 유럽 선수들을 빠른 스텝으로 파고들었다. 상대 선수가 한 스텝 뛸 때 한국 선수들은 두세 스텝을 뛰었다. 이른바 ‘발 펜싱’이다.

SK텔레콤의 지원과 선수들의 노력은 2012년 런던 대회에서 꽃을 피웠다. 한국은 펜싱에서만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따내 이탈리아에 이어 종합 2위를 기록했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 펜싱의 위상도 달라졌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이전에는 해외 전지훈련에서도 한국팀이 해당 국가에 합동훈련을 요청하는 입장이었지만 런던올림픽 이후에는 다른 나라에서 한국으로 전지훈련을 오고 합동훈련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말했다.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을 비롯해 세계적 강국인 스페인, 독일 국가대표도 한국을 찾아와 대표팀과 실전 경험을 쌓았다.

SK텔레콤은 도쿄올림픽을 앞두고는 충북 진천선수촌에 실제 결승 경기장과 똑같은 조건의 피스트(펜싱경기장)를 설치했다. 선수들이 실전 같은 훈련을 하며 올림픽 무대에서 심리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이 같은 지원과 선수들의 피땀이 합쳐지면서 한국은 다시 한번 펜싱 강국의 자리를 지켜냈다. 상대보다 한발 더 빠르게 움직이는 한국 사브르팀은 28일 유럽 강호인 독일, 이탈리아를 잇달아 침몰시키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날 여자 에페 단체전에서도 상대의 허점을 공략하는 날랜 몸놀림으로 신체적 열세를 극복하고 은메달을 따냈다.

한국 펜싱이 써내려가는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자 에페팀은 30일 단체전, 여자 사브르팀은 31일 단체전에서 메달에 도전한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