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본선이라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하겠다."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인 허정무 감독은 15일(한국시간) 원정경기로 치러진 덴마크와 평가전에 앞서 결연한 각오를 드러냈다.

허정무 감독으로선 덴마크와 맞대결이 지난 2007년 12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후 첫 유럽팀을 상대로 한 A매치이기 때문이다.

유럽에 배정된 월드컵 본선 티켓은 13장. 본선 조별리그 8개조 중 5개 조에는 유럽 두 팀이 배치된다.

한국의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첫 테이프를 끊었던 1986년 멕시코 대회부터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유럽 2개 팀과 힘겨운 16강 진출 경쟁을 펼쳐야 했다.

하지만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안방에서 유럽팀을 상대로 3승1무2패의 성적으로 4강 신화를 창조했을 뿐 원정에서는 4무8패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12경기 연속 무승 부진을 겪었다.

1954년 스위스 대회 헝가리와 첫 경기(0-9 패)를 시작으로 계속된 월드컵 본선에서 `유럽 잔혹사'는 한국 축구의 자화상이다.

같은 스위스 대회에서 터키와 2차전에서도 0-7 참패를 당한 한국은 32년 만에 다시 본선 무대를 밟은 1986년 멕시코 대회에서는 불가리아와 2차전에서 1-1로 비기며 본선 첫 승점을 챙겼으나 이탈리아와 마지막 경기 선전에도 끝내 2-3으로 쓴잔을 들었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에선 벨기에(0-2 패), 스페인(1-3 패), 우루과이(0-1 패)에 잇따라 패하는 등 조별리그 최악의 성적으로 세계 축구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1994년 미국 대회에서 2무1패로 가능성을 보였으나 유럽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스페인을 맞아 0-2로 밀리다 극적인 무승부를 연출했고, 2차전에서는 볼리비아와 득점 없이 비겼다.

그러나 독일과 3차전에서 2-3으로 분패하며 16강 꿈을 접어야 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대회 도중 사령탑 경질이라는 오점까지 남겼다.

멕시코와 1차전에서 하석주가 월드컵 본선 사상 첫 선제골을 뽑았지만 이를 지키지 못하고 1-3으로 역전패했다.

2차전에서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에 0-5 참패를 당했고 차범근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놨다.

벨기에와 3차전에서 태극전사들은 마지막 투지를 불살랐지만 1-1 무승부로 만족해야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승부사' 히딩크 감독의 지휘 아래 폴란드(2-0 승), 미국(1-1 무), 포르투갈(1-0 승)을 따돌리고 조 1위로 사상 첫 16강에 올랐고 여세를 몰아 이탈리아(2-1 승), 스페인(승부차기 승)을 차례로 꺾고 4강까지 오르는 기적을 연출했다.

하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1차전 상대인 토고를 2-1로 꺾고 기분 좋게 출발하고도 프랑스와 1-1 무승부에 이어 16강 진출의 분수령이었던 스위스와 3차전에서 0-2로 덜미를 잡혀 조별리그 탈락 아픔을 겪었다.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유럽 징크스'에 시달려온 걸 누구보다 잘 아는 허정무 감독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유럽예선을 조 1위로 통과한 덴마크를 첫 상대로 정했다.

높이와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몸싸움에 강한 상대로는 덴마크만한 팀이 없어서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7위로 한국(48위)보다 21계단이나 높은 덴마크는 스웨덴, 포르투갈, 헝가리 등을 제치고 6승3무1패의 좋은 성적과 16득점, 5실점의 안정적인 수비력을 갖춘 전통 강호다.

다행히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덴마크를 맞아 경기 초반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도 전반 중반부터 공격 주도권을 쥐고 대등한 경기를 펼쳐 값진 0-0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월드컵 본선을 7개월여 앞두고 자신감을 충전한 한판이었다.

유럽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던 한국 축구가 덴마크와 평가전 무승부를 발판삼아 18일 세르비아와 맞대결에서도 선전하며 월드컵 본선 첫 16강 진출 꿈을 다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에스비에르<덴마크>연합뉴스) 배진남 기자 hosu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