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 개막 사흘째인 2008년 8월10일 오전 중국 베이징의 국가아쿠아틱센터.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에 나선 '마린보이' 박태환(19.단국대)은 3번 레인에서 출발 버저와 함께 힘차게 물속에 뛰어들었다.

150m 지점부터 훌쩍 앞서나간 박태환은 경쟁자들의 추격을 절대 허용하지 않았고 3분41초86을 기록하며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두드린 뒤 전광판에서 자신의 기록을 확인하고서 불끈 쥔 주먹으로 하늘을 찔렀다.

한국 수영 뿐만 아니라 한국 체육 역사가 새로 쓰이는 순간이었다.

더위에 지쳐 있던 국민은 열아홉 살 소년의 금빛 역영에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감격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며 메달 도전을 시작한 한국 수영은 4년 전 아테네 대회에서 남유선이 여자 개인혼영 400m에서 8명이 겨루는 결선에 진출한 것이 최고 성적이었을 정도로 세계무대에서 변방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박태환은 44년 동안 숱한 국내 수영스타들이 이루지 못한 일을 해내고 말았다.

더구나 수영은 육상과 더불어 대표적인 기초종목. 체격과 힘이 좋은 서양 선수들의 전유물이었던 수영, 특히 자유형 종목에서 그냥 메달이 아닌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은 한국 체육사의 한 페이지를 새롭게 장식하는 대사건으로 남게 됐다.

어릴 적 천식을 고치려고 부모의 손에 이끌려 수영장을 찾은 박태환은 부력이나 유연성, 폐활량, 승부욕 등에서 수영 선수로는 천부적인 자질이 있었고 이를 발견한 노민상 현 수영대표팀 감독에 의해 길러졌다.

몸의 중심을 가슴에 두면서 좌우로 모두 호흡하고 좌우 팔, 다리의 힘의 세기가 거의 똑같다는 점도 큰 장점. 발차기의 리듬도 세계 최고 수준.
박태환은 팔을 휘저으면서 발차기를 2회, 4회, 6회로 자연스럽게 바꾸며 추진력을 조절하는 능력을 갖췄다.

끊임없이 이어진 역경을 잘 극복해낸 강한 정신력도 금메달의 원동력이었다.

아테네올림픽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했던 것을 비롯해 지난해 초 태릉선수촌을 나오면서 노민상 감독과 결별, 옛 스승들끼리 빚어졌던 폭행사건, 작년 말 전담팀이 해체되면서 새 코치를 영입할 수밖에 없었던 일은 끊임없이 박태환을 괴롭혔다.

하지만 박태환은 실패와 역경을 '약'으로 만들었다.

지난 2월 태릉선수촌 복귀를 결정하면서 노민상 감독의 품으로 돌아간 박태환은 스포츠과학이 접목된 프로그램에 따라 5개월 간 고된 훈련을 묵묵히 견뎌냈고 마침내 금빛 결실을 볼 수 있었다.

박태환은 일생 최대의 꿈을 이뤘지만 아직 도전의 길은 끝나지 않았다.

당장 내년 7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자유형 400m 2연패에 도전하고, 200m나 1,500m에서도 메달과 함께 자신의 기록을 경신해야 하는 목표가 남아있다.

또 2010년에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이 기다리고 있고 4년 뒤 런던올림픽도 출전해야 한다.

박태환이 국민에게 짜릿한 감동을 선사할 순간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서울연합뉴스) 박성민 기자 min7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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