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도 381타를 치는가

프로골프에서 4라운드 합계가 무려 93오버파 381타.

2라운드와 3라운드 스코어 차이는 무려 52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무대는 1974년 4월 미플로리다에서 열린 텔레하시오픈이다.

주인공은 마이크 리저 (미국)라는 프로골퍼.

언뜻 381타라는 스코어는 도저히 이해가 될 수 없다.

명색이 프로대회인데 그런 스코어를 가지고 어떻게 커트오프를 통과했단
말인가.

사실 리저는 1-2라운드를 아주 괜찮게 쳤다.

그는 73-71타를 치며 너끈히 커트오프를 통과했다.

2라운드까지의 그런 스코어는 4위를 기록한 존 인먼과 불과 3타차 밖에
나지 않은 호기록.

그러나 사고가 났다.

승마광이기도 한 리저는 커트오프를 통과한 후 그 기쁨에 승마장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유감스럽게도 말을 타다 나무에 걸려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것.

그는 오른쪽 무릎에 큰 타박상을 입었고 왼팔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죽어도 예선전은 싫다

그런 경우 대부분 골퍼는 기권한다.

그러나 리저는 기권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대회규정은 텔레하시오픈에서 "4라운드를 모두 완료한 선수"에게
다음대회 예선을 면제한다고 돼 있었다.

리저는 예선전을 치르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예선전은 꼭 1m짜리 더블보기 퍼트를 하는 꼴.

넣어봤자 더블보기이고 그렇다고 안들어가면 바보되면서 트리플보기를
하는 꼴이다.

규정상 "스코어는 관계없었으니" 리저는 라운드를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3-4라운드는 일요일 하루에 36홀 경기로 치러졌다.

겉보기에 리저는 "케빈 코스트너" 뺨치게 멋있었다.

흰색 바지에 흰색 티셔츠, 그리고 흰 구두.

그러나 그의 스윙은 역시 아니었다.

오른팔로만 스윙하니 볼이 나가겠는가.

1번홀에서 리저의 티샷은 겨우 레이디 티 근처까지만 굴렀다.

리저는 단 두개의 클럽만 가지고 플레이 했다.

5번아이언과 퍼터였다.

<>71타에서 123타로

3라운드 스코어는 51오버파 123타.

그러나 오후의 4라운드 스코어는 114타로 획기적 개선이 이뤄졌다.

총 스코어는 381타였지만 리저는 다음주 바이런 넬슨클래식 참가자격을
따냈다.

그의 합계는 우승자 알렌 밀러보다 총 105타를 더 친 스코어였다.

아쉬운건 그 후의 스토리가 전해지지 않았다는 점.

월,화,수 3일동안 리저가 부상에서 완쾌, 그 바이런넬슨대회에서
뛰었는지, 또 참가했다면 스코어가 얼마인지 챙긴 사람이 없는 것.

아뭏든 리저 스토리는 프로들세계에선 "예선 면제만큼 더 가치있는 게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저무는 97년.

당신은 두손 가지고 14개 클럽을 모두 사용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 김흥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