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명이 성폭행"…시골 마을 뒤흔든 위험한 소문의 실체는
바닷가에 인접한 전라남도의 한적하고 아름다운 한 시골 마을. 평화롭던 이곳에 1년 전부터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한 여성이 이웃들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신고해 경찰의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성폭력 피해를 주장한 사람은 50대 여성 박순영(가명) 씨. 농번기 때 부족한 일손을 서로 도우며 끈끈했던 마을 분위기는 이내 흉흉해졌고, 소문의 근원에 대한 의심이 피어올랐다.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게 박순영 씨의 딸이라는 것이다.

한 마을 주민은 "그 딸이 좀 맹랑해요. 엄마가 딸한테 간 뒤로 이 사건이 만들어지더라고. 엄마는 뒤로 빠지게 하고 딸이 돈을 요구했다"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갑자기 외지에서 나타난 박순영 씨의 딸이 사건의 배후에 있다고 말한다. 그녀가 어머니와 성관계한 남성들의 목록을 만들었으며, 심지어 그 남성들을 협박해 합의금을 2천만원씩 받아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모녀로부터 모함받고 성범죄자로 몰리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주민까지 있다고 했다. 작은 시골마을을 뒤흔든 위험한 소문의 진위가 밝혀지기 전, 갑자기 마을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모녀. 충격적인 소문의 실체는 무엇이며, 모녀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오랜 수소문 끝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박순영 씨의 딸 민지(가명)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엄마 순영 씨를 데리고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그녀는, 마을 사람들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민지씨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 순영 씨가 갑자기 "집에 가기가 무섭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처음엔 이른 사별의 아픔 정도로 생각했던 민지 씨는, 대화를 하던 중 엄마가 마을 이웃들로부터 수년간 성폭행을 당해왔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었다. 놀랍게도 어머니가 지목한 가해자는 무려 13명에 이르렀는데, 대개 농사일로 알고 지냈던 이웃집 남성들이었다.

열아홉 살 때 결혼해 4남매를 키우며 이곳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순영 씨. 멀쩡했던 그는 10년 전 서서히 뇌혈관이 좁아지는 희귀 난치성 질환인 '모야모야병'이 발병해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이후 말과 행동이 어눌해졌고, 결국 지적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런 엄마가 이웃으로 알고 지냈던 마을 사람들로부터 지난 7년간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해왔다는 얘기를 듣고, 민지 씨는 자신이 당한 것처럼 온몸이 고통스러웠다.

민지 씨는 작년 3월 이웃 주민 13명을 성폭행과 성추행 혐의로 전부 고소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순영 씨는 두 달간 총 7차례에 걸쳐 13시간 10분 동안 자신의 피해 사실에 대해 진술했다. 그러나 피의자들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거나, 서로 합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13명 중 1명만이 장애인 준강간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고 있고, 신고 전후 사망한 2명을 제외한 10명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검찰의 지휘로 경찰은 작년 11월 재수사를 시작했지만, 취재 결과 또다시 ‘혐의 없음’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모녀의 주장은 합의금을 노린 모함인 걸까, 아니면 의뭉스러운 이웃들이 벌인 인면수심의 범죄인 걸까? 15일 방송되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지적장애 여성의 진술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성폭행 사실을 검증하기 위해 국내 최고의 진술분석 전문가들을 찾아 나선다. 진술의 신빙성을 상세히 따져보는 한편, 가해자로 지목된 13명의 남성을 직접 만나 충격적인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시골마을을 뒤덮은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 근원의 실체를 추적한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