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삼성 호암상 화학·생명과학부문상 수상자인 강봉균 서울대 교수가 지난 7일 연구실에서 뇌모형을 들고 뇌과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태웅 기자
올해 삼성 호암상 화학·생명과학부문상 수상자인 강봉균 서울대 교수가 지난 7일 연구실에서 뇌모형을 들고 뇌과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태웅 기자
기억을 눈으로 생생히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게도 그런 기술은 아직 공상과학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기억이 어떻게 저장되는지는 이미 눈으로 볼 수 있다. 2018년 강봉균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 ‘뇌의 기억 현상’을 처음으로 관측해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뇌세포 속에 존재하는 신경세포(뉴런)들의 연결인 시냅스에 기억이 저장된다는 학설이 널리 퍼졌으나 1949년 제기된 후 70년간 직접 확인된 적은 없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강 교수는 지난달 ‘한국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호암상의 화학·생명과학부문상을 받았다. 호암상이 화학·생명과학 분야 수상자를 별도로 뽑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강 교수는 “수많은 연구자가 개척한 길을 좀 더 명확하게 한 것일 뿐”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강 교수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사진작가’에 비유했다. 그동안 시냅스의 작동 메커니즘을 규명해낸 간접적 증거는 많았지만 이를 확실하게 영상으로 관찰한 것은 강 교수의 연구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관악산에 호랑이의 똥도 있고 털도 있고, 발자국도 있으면 호랑이가 있다고 다들 짐작하겠죠. 하지만 진짜로 있는지는 직접 확인해 봐야죠. 호랑이를 사진으로 촬영해 보여준 게 저희 연구진이 한 역할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강 교수는 30년간 뇌과학 외길을 걸어온 국내 대표 석학이다. 첫 연구 대상은 바다달팽이의 일종인 ‘군소’였다. 군소는 신경다발이 크고 관찰하기 쉬워 신경세포 연구에 적합하다. 제주 출신인 그는 서울대에서 미생물학 전공으로 석사까지 마친 후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신경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과정 지도교수가 훗날 군소의 기억을 연구해 노벨상을 수상한 에릭 캔들 교수였다. 1994년 서울대에 부임해 연구를 이어갈 때는 어시장을 헤매면서 군소를 찾아 발품을 팔기도 했다.

강 교수는 뇌과학에 빠진 계기를 ‘미시의 세계’를 탐구하는 데 매력을 느껴서라고 설명했다. 미생물학과로 시작했지만 뇌과학으로 연구 분야를 바꾼 것도 더욱 작은 세계를 탐구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정신, 영혼, 의식 같은 세계도 ‘세포 단위’로 연구해보기 위해 이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됐다”고 했다.

뇌과학은 대표적인 기초과학 분야 중 하나다. 연구 난도가 높아 학생들의 선호도는 떨어진다. 열심히 키운 인재도 박사과정 후 해외 대학으로 떠나는 일이 많다.

강 교수는 “뛰어난 인재가 있더라도 연구원들의 장래를 생각해 해외로 보내야 하는 게 한국 대학 연구실의 현실”이라며 “국내에서도 마음 놓고 연구할 수 있도록 기초연구 환경에 대한 뚝심있는 투자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의 다음 연구 목표는 외부 자극을 줄 때 ‘기억의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는 “기억의 기능적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면 인류의 난제인 치매 치료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배태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