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손뜨개 작품 5천여 점 기부한 석순자씨…郡 홍보 물품으로 톡톡히 역할
"찾는 사람 있으면 힘닿는 데까지 계속할 것, 무엇인가 해냈다는 기쁨 더 커"

"남을 돕는다는 기쁨보다 내 일을 해냈다는 만족감이 더 커요.

그러니 나 스스로 감사하죠"
[#나눔동행] 80세 불편한 몸에도 꿋꿋하게 봉사…옥천 '뜨개질 할머니'
충북 옥천군 옥천읍 서대2리에 사는 석순자 할머니는 80세의 고령에다 다리마저 불편해 온종일 침대 신세를 져야 한다.

하지만 침대에 걸터앉은 석 할머니의 양손은 연신 실과 바늘이 오가며 쉴 새가 없었다.

지난 21일 석 할머니를 만난 지 한 시간 남짓. 어느새 알록달록한 수제 수세미 하나가 완성됐다.

"뜨개질하면 시간이 잘 가고 아픈 것도 잊어. 질리지 않는단 말이야"
뜨개질 얘기에 흥이 난 석 할머니는 불쑥 커다란 종이가방을 꺼내 보였다.

잘 포장된 '뜨개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수세미부터 아기 모자, 목도리까지 당장 가게에 가져다 팔아도 될 법한 수준급 작품들이다.

작품 자랑도 잠시. 석 할머니는 "벌써 가져갈 때가 됐구먼"이라고 나지막이 혼잣말을 했다 .
석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한 고령에도 자원봉사의 끈을 놓지 않고 이런 뜨개 작품으로 사랑 나눔을 실천하는 '봉사왕'이다.

8년 전 양쪽 무릎관절 수술을 한 이후 몸이 불편해 오랫동안 해오던 자원봉사활동을 할 수 없게 된 석 할머니는 대신 집에 앉아서도 할 수 있는 뜨개질을 선택했다.

하루 9시간 이상 틈나는 대로 뜨개질을 했다.

한 달이면 250∼300개의 작품을 만들었다.

[#나눔동행] 80세 불편한 몸에도 꿋꿋하게 봉사…옥천 '뜨개질 할머니'
이렇게 모인 작품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와 노인장애인복지관, 노인요양병원에 기부하거나 주변 지인에게 선물했다.

4년 전부터는 옥천읍행정복지센터와 연을 맺어 대부분을 이곳에 무료 후원하고 있다.

작품이 어느 정도 모였다 싶으면 석 할머니가 손수 포장까지 해 행정복지센터에 전화를 건다.

그러면 작품을 받으러 맞춤형복지팀 직원이 할머니 집에 들른다.

매달 두 차례 반복되는 일상이다.

행정복지센터는 뜨게 작품에 '거동불편으로 누워서 생활하시는 석순자 할머님께서 손수 만들어 후원해주신 작품입니다'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여 저소득 가정, 경로당 등에 나눠주는 등 지역 홍보 물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호응은 기대 이상이다.

주기적으로 석 할머니의 작품을 찾는 마니아층이 생기고, 감사의 말을 꼭 전해달라는 당부도 줄을 잇는다.

김윤주 옥천읍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장은 "석 할머니의 마음은 돈 주고도 못 산다.

행사가 있을 때면 어떻게 알고 더 많이 뜨개질하신다"며 "이제 할머니에게 연락이 안 오면 어디 편찮으신 게 아닌가 걱정할 정도가 됐다"고 감사해했다.

[#나눔동행] 80세 불편한 몸에도 꿋꿋하게 봉사…옥천 '뜨개질 할머니'
석 할머니의 봉사 뒤에는 숨은 조력자가 있다.

인터뷰 내내 곁을 지키고 서 있던 남편 박무남(79) 할아버지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대신해 사흘 간격으로 실과 포장지를 사러 간다는 박 할아버지는 "실 색깔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바꾸러 가야 하는 등 여간 귀찮은 게 아니야"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10남매 중 첫째인 나한테 시집와 홀시아버지 극진히 모시고, 시동생 아홉에 아들딸 셋까지 훌륭히 키워낸 고마운 사람"이라며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도와줘야지"라고 속마음을 전했다.

지난 8년간 석 할머니가 기부한 작품은 어림잡아 5천여 점에 이른다.

월 8만원가량 드는 실값 등이 부담되기도 하지만 건강이 되는 한 뜨개질을 멈출 생각이 없다는 게 석 할머니 말이다.

석 할머니는 "처음에는 몸도 아프면서 이런 걸 왜 하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이걸 받고 기분 좋아하고, 잘 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기운이 절로 나더라"며 웃었다.

이어 "나보다 더 큰 봉사를 하는 사람도 많고 거기에 비하면 하찮은 일일 수도 있지만, 내 작품을 찾는 이가 있는 한 힘닿는 데까지 뜨개질을 계속할 것"이라며 "아프지 않고 무엇인가를 해내고 있다는 기쁨을 계속 느끼고 싶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