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주자·당내 거국내각 요구하다 새누리 수용에 "진정성 없다"
"진상규명 없는 국면전환용"…"대통령 사과부터 거국내각까지 '기획 대응'"
거국내각 "하자, 말자" 분분…특검협상·장외투쟁 여론 등 고심


'최순실 파문' 속에서 야권이 좌표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애초 거국중립내각을 요구했다가 새누리당이 이를 전격 수용하자 다시 거부 입장을 표명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마치 자신들이 제안하고서도 정국의 상황에 따라 이를 보류하는 듯한 인상을 보여 전략적인 대응에 허점을 노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초래하고 있다.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정국의 최대 호재를 맞고서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내부의 비판적 시각이 나오는 배경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가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도중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가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도중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전략에 말려든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비등한 상황이다.

엄밀히 따져보면 더불어민주당이 당 지도부 차원에서 거국중립내각을 요구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이번 사태 직후 당내 대권 주자들을 중심으로 거국내각 요구가 잇따르면서 마치 당 전체의 입장인 것처럼 외부에 비친 게 사실이다.

국민의당 역시 당론화하지는 않았지만,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거국내각을 언급하고 안철수 전 대표가 총리를 포함한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는 등 사실상 거국내각 구성 요구가 당의 입장으로 해석됐다.

일단 야권 지도부는 새누리당의 거국중립내각 수용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여기에는 정치적 코너에 몰린 새누리당 지도부가 내놓은 이번 제안에 분명한 '진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인식과 주말 동안 나타난 여권의 수습 움직임과 검찰 수사를 비롯한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 조직적이라는 의구심이 깔려있다.

그러나 동시에 최순실 파문으로 확실하게 잡은 정국 주도권을 내줄 수 없다는 의지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안철수 전 대표는 31일 비상대책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지금 정부와 여당은 작전 펼치듯 기획 대응하고 있다"며 "대통령의 녹화사고 이후 최순실의 인터뷰, 고영태 귀국, 조인근 전 연설비서관의 모르쇠 해명, 최순실 전격 귀국, 청와대 비서진 교체, 새누리당의 거국중립내각 수용 등이 일사천리로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야권이 거국중립내각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은 진상규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선후(先後)의 문제로 보고 있다.

박 대통령 사과 이후 청와대 개편과 최씨 귀국 등 이번 사태를 덮기 위한 여권의 시나리오가 작용하고 있고, 그 연장선에서 새누리당이 거국중립내각이라는 야권의 주장을 마치 수용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해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논리다.

여기에 민주당의 특검 주장에 이를 수용하며 여론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듯하면서도 대통령이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상설특검' 주장을 내세우는 등 여권의 행동에 진정성이 전혀 없다는 게 야권의 판단이다.

추미애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진상규명이 선행되지 않는 거국내각은 국면전환용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며 새누리당의 거국내각 주장을 일축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도 "우리는 특별법에 의한 특검을 통해서만이 진상규명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새누리당이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야 거국내각을 제안한 진실성이 있다"며 새누리당의 거국내각 주장을 '국면전환용'으로 깎아내렸다.

거국중립내각을 가장 먼저 주장했던 문재인 전 대표 측 역시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청와대 비서진과 황교안 국무총리 라인으로는 진실규명이 불가능하고 이런 상황에서 리더십 공백을 메우는 방안으로 거국내각을 말한 것"이라며 "사태에 책임이 있는 집단이 마치 거국내각을 주도하는 것처럼 상황을 끌고 가면서 게이트를 덮으려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며 여권발(發) 거국중립내각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취재진에게 "거국내각을 하려면 여야가 다 모여 어느 장관은 어느 당에서 추천할지 등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하지만 그것은 지금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은 PBC 라디오에서 "새누리당의 거국내각 제안은 자기들이 정국을 주도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야권 주류의 이 같은 분위기와는 달리 내부에서 거국내각 요구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대통령은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들이 준비한 밑그림을 그대로 수용하고, 거국중립내각이 조속히 출범할 수 있도록 모든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한시가 급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천정배 전 공동대표는 "대통령은 자신의 허물을 깊이 반성하고 진심으로 엎드려 사죄한 뒤 수사를 자청해야 한다"며 "그런 전제에서 여야 대표를 만나 거국내각일 수도 있고 다른 방법일 수도 있지만 수습책을 논의하라"고 했다.

국민의당은 박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의 청와대 회담을 제안하며, 의제로 거국중립내각도 포함시키자고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의총에서 거국내각을 포함한 타개책을 논의했지만 초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거국내각을 받자는 주장이 많았지만 지도부에서는 이를 반대하는 등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 지도부가 뒤늦게 거국중립내각을 뒤로 미루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등 입장 정리를 하고 나섰지만, 당내 제각각 분출되는 해법은 물론 '별도특검' 관철을 위한 대여(對與) 협상과 장외투쟁 여론 등 넘어야할 산이 적지 않아 고심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honeyb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