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자금 법정한도 폐지하라 ] '효율성 제고'는 늘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돼왔다. 효율성을 거론할 때면 고비용과 저효율성의 상징인 우리 정치가 도마에 오르게 마련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터져 나오는 정치적 스캔들의 뒤에는 정치 자금의 수수를 둘러싼 비리와 부패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는 우리 정치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많은 돈이 드는 선거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적정 금액의 상한선을 정하고 이를 지키도록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돈 안드는 선거라는 이상적 목적을 위해 선거비용의 상한액을 지키기 어려울 정도로 낮게 책정하면 그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오히려 더 커질 수도 있다. 승자와 패자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후보들이 법이 허용하는 한도를 넘어서는 선거 비용을 사용했다는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15대 총선이후 실시된 한 조사에 따르면 경쟁 후보자가 선거비를 법정한도 내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보는 후보자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6대 총선 출마자를 대상으로 한 실증 연구에서는 후보자들의 선거비용이 평균 5억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고 10억원을 넘게 쓴 후보도 적지 않았다. 결국 모두가 법을 어기고 있다는 얘기다. 자연히 정치자금에 대한 논의는 예민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지킬 수도 없고 지켜지지도 않는 법 규정으로 인해 법의 권위는 실추되고 정치인에 대한 불신도 높아지게 되었다. 이같이 비현실적인 선거자금 상한규정은 정치부패의 주요한 근원이 될 수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선거자금이 정치부패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선거비가 얼마나 사용되었는지, 그 돈의 사용처는 어디였는지, 또 어디서 그 자금을 마련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역이 명백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선관위에 제출하게 되어 있는 공식적인 신고 내역을 통해 이를 밝히기란 불가능하다. 후보자들이 제출한 공식적인 신고에 의하면 '모든' 후보가 법적 선거비용의 한도를 준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치부패를 방지하는데 가장 효과적이고 중요한 조건이 정치 자금의 유입과 지출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라는데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낮은 법정선거 비용이 정치비용의 내역을 투명하게 밝힐 수 없도록 정치인들의 발목을 잡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선거비용과 관련된 우리의 관심은 보다 본질적인 문제로 옮겨가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의 관심은 선거에서 돈 쓰는 행위를 막으려는데 집중돼 왔다. 그 결과 이상과 현실이 괴리되는 상황을 낳고 말았다. 특히 후보들이 많은 돈을 퍼부으면 자신의 당선 확률이 조금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한 아무리 이상적인 법적 규제가 존재한다고 해도 법정선거비 한도는 지켜지기 힘들다. 부패는 권력획득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갖는 정치인과 금전을 매개로 향후의 불공정한 경제적 혜택을 도모하는 이들 사이에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인, 혹은 정당이 특정한 이해관계를 갖는 이들로부터 과도한 지원을 받게 된다면 정치부패의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이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비현실적으로 낮게 책정되어 있는 선거비용의 법정한도액을 아예 폐지하거나 대폭 완화하여 현실화하는게 바람직하다. 그 대신 선거자금의 입금과 출금, 특히 선거자금의 모금처를 반드시 공개하도록 함으로써 돈을 매개로 한 정치권력과의 음성적이고 부정적인 거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 대통령 선거에서의 선거자금 문제는 우리나라 정치부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이다. 그동안 비현실적 상한규정으로 인해 어떤 대통령도 정치자금 문제에서 자유롭기 어려웠다. 정치자금과 관련된 정치권의 불투명한 관행이 자연스럽게 '면죄부'를 얻는 풍토를 조성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정치자금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정치부패를 크게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지름길이 될 것이다. 법정선거비용의 현실화는 오히려 돈이 많이 드는 정치관행을 부추길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따라서 법정선거비 한도를 높이더라도 정치자금 입출금의 투명화를 전제로 해야 한다. 지금처럼 음성적인 정치자금의 사용이 일반화되는 상황을 그대로 둔 채 선거비 상한액만 현실화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 대표집필=강원택 숭실대 교수 > [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한국경제신문 공동기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