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국(FDA)의 검사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하라"

"미국이 한국에 대해 민간기업의 영업활동에 간섭하라고 강요하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

미국이 무리수에 가까운 통상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대외통상자세가 이처럼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되고 있어
변화의 방향과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는 종전과는 달리 우리가 직접 미국 등 상대국에
요구할 것은 요구한다는 점.

지난 5일 열린 제24차 한미통상 실무협의체에서 미국에 대해 섬유류
통관지연사례와 식품의약국(FDA)의 검사기준을 거론하며 시정을 촉구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측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듣던 회의가 이제 우리측의 요구를 전달하는
창구로 이용되기 시작한셈이다.

정부는 이보다 앞서 브라질의 섬유류및 자동차수입 제한조치에 맞서
세계무역기구(WTO)제소조치를 적극 검토하며 철회압력을 가해 결국 브라질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EU측의 반덤핑남발이나 중국내 지적재산권 침해행위 등에 대해서도 정부는
목소리를 높이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모두 본격적인 공세전환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하나의 변화는 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외국요구에 대해서는
일관된 대응논리를 개발해 버티고 있는 점이다.

식품검사.검역제, 지프세금인상, 저작권소급적용, 국민연금일시금
지불문제 등의 쟁점들에서 우리측은 양보할 의사가 전혀 없다며 철옹성을
쌓고 있다.

특히 식품검사.검역제의 경우 미국이 두차례에 걸쳐 우리를 WTO에 회부하며
끈질기게 개선을 요구했음에도 우리측은 "스스로 개선할 필요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손질을 가하고 있다"며 미국의 패널설치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이는 WTO에 회부되면 지레 겁을 먹던 종전태도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통신조달시장 개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민간기업의 구매행위에 정부가 간섭할 수 없다는 논리로 추가개방요구에
맞서고 있다.

미키 캔터미상무장관이 방한해 이런저런 요구를 늘어놓을때 당국자들이
"별로 신경안쓴다"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인 것도 주목할만한 변화다.

이런 변화는 무엇보다 지난해까지 우리가 자동차 농산물 등 양자차원의
협의과정에서 개방할 것은 대부분 개방한만큼 더이상 우리가 당할게 없다는
자신감에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WTO초기단계에서는 몰라서 엉뚱하게 겁을 먹고 당한 측면도 있었지만
지금은 "패널로 가서 진다고 해도 본전"이라는 식의 인식전환이 이뤄진
상태다.

물론 최근의 무역수지적자같은 위기요인도 이런 강경.공세적 통상외교의
배경으로 지적된다.

정부도 외국의 무역규제나 부당한 관행을 체험한 업계의 애로사항을 직접
나서 해결해줘야 한다는 공공서비스정신으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통상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런 변화를 우리의 통상외교"정책"으로까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아직 짜임새를 갖추고 있지 못한 기구의 재편과
전문인력의 양성 및 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안의 분란은 대외적으로 힘의 약화를 초래하고 전문가없는 대응은
조롱거리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이다.

< 허귀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