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이영지와 월드클래스 대한민국
지난해 마지막 금요일에 Mnet의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쇼미)’의 열한 번째 우승자가 나왔다. 이영지, 그는 2019년 같은 채널의 또 다른 인기 경연 프로그램인 ‘고등래퍼’의 세 번째 우승자였기도 하다. 이영지는 쇼미가 11년을 걸쳐 진행되는 동안 처음 탄생한 여성 우승자다. 아마 몇 년 전이거나 다른 경연 프로그램이었다면 이 사실이 꽤나 강조됐을 것이다. 하지만 쇼미는 그러지 않았고, 그것이 힙합을 즐기는 세대의 정서다.

올해 3월 초에 일어날 일을 예언해보고자 한다. 영국의 저명 경제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을 전후해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은 열한 번째 꼴찌를 할 것이다. 유리천장은 여성이 위계질서가 있는 직장 등에서 위로 올라가는 데 한계에 부딪히는 현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유리천장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대해 경제활동 참여, 임금 등 10개 분야의 남녀 차이를 지수화한 것이다. 한국은 한 번도 꼴찌를 놓친 적이 없고, 그것이 한국 남녀평등의 국제적 위치다.

한국의 남녀평등이 정체돼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구 중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경제활동참가율(경활률)은 남성 경활률을 100%로 놓았을 때 여성 경활률이 2006년에는 68%에 불과했으나 15년 후인 2021년엔 77%를 넘었다. 조직 내 고위직에 있는 여성은 남성 100명당 2006년에 6명이었으나 2021년에는 19명 정도로 늘었다. 세계경제포럼이 기업 경영자들에게 “귀하의 국가에서 여성이 비슷한 일을 하는 남성과 비교해 어느 정도 임금을 받습니까?”라고 물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남성의 임금을 100%로 놓았을 때 여성의 임금 수준은 2006년 49%였으나 2021년엔 57%가 넘었다. 여러모로 한국의 남녀는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다만 현 상태와 변화 속도는 ‘월드 클래스’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미 영화, 드라마, 대중음악, 클래식 음악, 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은 월드 클래스의 대접을 받는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고, 세계적인 기업도 여럿 있다. 그 덕에 국민 개개인이 해외여행을 가든 국내에서 외국인을 만나든 외국인과 거래를 하든 더 자신 있고 당당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이 최소한 선진국 안에서는 문화로 정착해가는 지금, 조직 내의 고위직 여성이 20%가 되지 않고 비슷한 일을 하는데도 여성은 간신히 남성 임금의 반 넘는 수준을 받는 나라라면 월드 클래스는 아닌 것이다.

그래도 뭐든 빨리 변하는 대한민국이니 시간이 흐르면 남녀평등의 국제적 위치도 바뀌지 않을까 기대한다면, 대답은 부정적이다. 필자가 세계경제포럼이 2006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성 격차 지수’의 자료를 기반으로 2030년 남녀평등 순위를 추정해 보니 155개국 중 99등이 예상된다. 지수를 구성하는 각 항목의 국가별 17년간 수치가 추세를 유지할 것이라 가정하고 계산한 결과다. 2022년 발표된 순위는 146개 나라 중 99등이었다. 2021년에는 156개국 중 102등이었는데, 한국보다 상위에 있던 몇 나라가 2022년 조사에서 빠지면서 그나마 순위가 올라갔다. 추세를 깨는 방책이 아니고는 월드 클래스 남녀평등의 근처에도 못 간다는 뜻이다.

혹시 여성이 경제활동을 더 활발하게 하면 가뜩이나 낮은 출산율이 더 떨어질까 우려하는 분이 계신다면, 그것조차 시대가 바뀌었다고 답변할 수 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OECD 국가에서 여성 경활률이 높을 때 합계출산율도 높은 경향이 나타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반대였는데 강산이 변한 만큼 인간사도 바뀐 것이다. 일만 하기도, 아이를 낳아 키우기만도 녹록지 않은데 둘 다 잘하는 나라들은 어떻게 하나 궁금할 수밖에 없다. 여러 문제가 해결돼야 하지만 분명 남녀평등도 한 축을 담당한다.

희망적인 것은 이영지 세대가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도, 아무것도 미안하지 않다’는 구애받지 않는 의식을 가졌다는 점이다. 기성세대가 그들의 각박함을 덜어준다면 그들에 의해 월드 클래스 대한민국이 될 시기가 앞당겨지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