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누리호 2차 발사'가 성공하려면
지난해 10월 21일 온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이 발사는 성공일까, 실패일까. 단 분리와 위성 모사체 분리, 그리고 가장 난제로 꼽히는 엔진의 클러스터링 부분까지는 성공했지만, 위성의 궤도 안착에는 실패했다.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그러면 어디까지가 성공이고 실패인가. 수없는 시행착오 과정마다 실패의 기준을 정하기란 쉽지 않다.

실패와 수정 과정을 생략한 결과만의 성공이란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불확실성 높은 도전일수록 성공한 실패도 많다. 하지만 연구자에게 실패는 늘 두렵다. 허용 범위를 넘는 계획과 실제의 차이를 놓고 결과의 실패와 과정의 실패로 구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발 과정에 충실했음에도 결과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건 성실한 실패다. 실패의 과정마다 학습이 일어나고 노하우가 축적된다. 개발의 결과에는 부산물도 묻어나온다. 기술적 파급의 효과다. 누리호 프로젝트에 참여한 300여 개 기업은 개발 역량과 기술을 이미 공유했고, 그 경험은 다른 제품 개발로 파급된다.

성실한 실패가 얼마나 축적됐는지는 연구 역량의 잣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실패의 경영을 학습하는 실패박물관도 있다. 로버트 맥매스가 미국의 명문 미시간대가 있는 앤아버시에 설립한 ‘뉴프로덕트 웍스’. 여기엔 실패 학습을 돕는 수만 가지 실패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일본의 과학기술진흥기구(JST)는 실패지식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연감까지 발간한다. 모두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목적이다. 우주 개발에는 실패가 다반사다. 대표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개발한 팰컨1은 다섯 번의 발사 시도 중 세 번 실패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원형인 우주 개발 초기 미국의 아틀라스 시리즈도 여덟 번 시도에 다섯 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누리호의 기반을 다진 나로호도 두 번의 실패 끝에 세 번째 성공했다. 오늘날의 뉴스페이스 시대에 일상처럼 발사체를 우주로 보내는 화려한 이면에는 최초 성공률 30%의 개발 위험, 그리고 긴 시간의 축적이 있다. 현재까지 자국 발사체로 시도한 11개국 중 첫 발사에 성공한 경우는 구소련과 프랑스, 이스라엘 3개국뿐이다. 국가별로 봐도 한 번의 성공 확률은 낮다.

2013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연구개발(R&D)에 실패하더라도 성실한 수행이 확인되면 연구자의 불이익이 없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실패의 경험을 자산화하기 위해 국가연구개발사업 관리 등에 관한 규정에 ‘기초연구단계 연구개발과제 수행에 대한 특례’를 규정했다. 재도전의 기회를 주려는 법적 근거다. 그래도 연구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하다. 그동안 정부의 R&D 사업에서 목표 달성에 실패할 경우, 연구비 반납과 연구 참여 제한 등 연구자에게 책임이 부과돼 도전적인 연구가 사실상 힘들었다. 연구 환경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실패에 대해 법적 다툼의 소지는 남는다.

팀을 이끌면서 연구진을 책임져야 하는 지금의 프로젝트 중심 개발 방식이 연구 경쟁력 제고에 효율적이긴 하지만 책임자는 실패 확률이 낮은 안정적인 과제를 선호하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미래 생존 전략의 핵심을 과학기술에서 찾으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있어야 한다.

누리호의 2차 발사가 다음달로 다가오면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7분56초를 앞두고 중단한 2009년 나로호 첫 발사. 연이은 발사 일정 지연으로 겪은 후유증을 지금 누리호 개발자들은 기억한다. 그들의 도전에 성원을 보낸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기술개발자들의 성과를 지켜보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그들의 도전과 성공을 격려하고 기원한다면 관전법부터 바꿔보자. 국무총리, 정치인들까지 고흥을 찾아갈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실패의 두려움부터 줄여주는 제도를 마련하는 게 과학자들의 도전을 돕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