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영의 데이터로 본 세상] 산업으로 떠오르는 '꿀잠'

낮보다 밤이 길어지는 추분(秋分)이 지났다. 길어진 밤과 수면시간은 별개의 문제인 듯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하루 수면시간은 8시간이다. 권장 시간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선진국 시민의 3분의 2가 이 기준을 채우지 못한다는 통계가 약간의 위안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잠의 중요성을 이해한다면, 이 통계는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몸은 자는 동안 면역계를 복구하며, 수많은 병균 및 악성 종양과 싸운다. 또 인슐린과 당을 조절해 대사 상태를 원활하게 유지한다. 더 나아가 잠이 부족하면 신체적·정신적 질환이 발생한다는 문제도 있다. 많은 연구를 통해 수면 부족이 암, 알츠하이머, 당뇨, 우울증, 불안증, 신경쇠약 등의 발생 확률을 높인다는 것이 밝혀졌다.

수면 부족의 위험성이 밝혀진 건 1980~1990년대로 비교적 최근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지구의 자전, 즉 낮과 밤의 24시간 주기에 맞춰 몸이 리듬을 타도록 조절하는 생체 시계가 있다. 밤 동안엔 세포를 쉬게 하고, 낮엔 일하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 브랜다이스대의 제프리 홀, 마이클 로스바시 교수와 마이클 영 록펠러대 교수는 초파리 실험을 통해 생체 시계의 작동 원리를 분자 수준에서 규명했고, 이 공로로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연구에 따르면, 이 생체 시계가 고장나면 불면증을 비롯한 수면장애가 발생하며 정상 수면이 어려워진다고 한다.
생체 시계 고치는 데이터 과학
[차미영의 데이터로 본 세상] 산업으로 떠오르는 '꿀잠'

다행히 고장난 생체 시계를 고치는 몇 가지 방법이 밝혀졌다. 그중 하나는 아침 시간 야외에서 햇빛을 직접 쐬는 것이다. 이는 12~15시간 후 멜라토닌 호르몬의 분비를 활성화해 숙면을 돕는다. 아침 기상 시간을 고정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규칙적인 일과는 일관된 수면시간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일주기 리듬은 24시간보다 조금 길어 매일 재설정이 필요한데, 아침 기상 시점이 이에 제격이기도 하다.

위와 같은 생체 시계를 고치는 방법을 쉽게 따를 수 있도록 돕는 연구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필자가 속한 기초과학연구원(IBS) 수리 및 계산과학 연구단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은 이상원 경북대병원 정신과 교수팀과 함께 불면증 완화에 도움을 주는 모바일 중재 앱을 개발했다. 중재(intervention)란 사람들의 일상에 개입해 나쁜 증상의 정도를 완화하는 비침습적 치료 방법의 하나다.

이 앱에서는 수면 기록은 물론 낮 동안의 활동 데이터에 근거해 인공지능(AI)이 사용자 맞춤형 중재를 제공한다. 가령, 사용자가 기상 시간을 지정하면 그 전날 침대에 누울 최적의 타이밍을 알려주거나 낮 동안 더 활발히 움직이라고 조언하는 식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일부 사용자에게는 취침 시간을 늦추라고 알려주기도 한다. AI가 사용자의 생체 시계를 지속해서 관리하며 인간의 장수와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 이 연구의 궁극적 목표다.
숙면 돕는 제품·서비스 러시
수면의 질은 다양한 방법으로 측정하는데, 그중 침대에 누운 총 시간 대비 실제로 잠든 시간을 의미하는 수면 효율이 가장 중요하다. 300만 분에 달하는 방대한 데이터에 근거해 학습된 AI 모델이 사용자마다 수면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알려준다. 공동 연구에 참여한 이상원 교수는 “개개인에 맞춰 치료하는 정밀의학의 요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AI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다학제 간 융합 연구는 미래 의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수면을 상품화한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가 매년 출시되고 있다. 2014년 미국의 수면장애 인구가 7000만 명을 넘었고, 이 숫자가 가파르게 오른다는 통계가 나온 이후 관련 제품·서비스 출시가 본격화됐다. 세계가 수면을 산업으로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삼성, 구글, 애플, 샤오미 등 스마트 워치 기반 웨어러블 기기는 수면 데이터 기록을 가능하게 한다. 숙면을 돕는 스마트 침대, 매트리스, 베개, 마스크도 나왔다. 수면무호흡증을 탐지하는 초음파 기반의 의료기 상품도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각자 수면 패턴을 수집하고 점검할 수 있게 됐다. 반면 수면을 날마다 챙기는 비타민이나 영양제처럼 중요하게 여기고 관리하는 문화는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삶의 급한 일들에, 넷플릭스 영화에 혹은 SNS를 보는 순간들에 수면은 가장 먼저 뒤로 밀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잠이 보약이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며 잠을 반납한 채 피로가 누적되는 일상을 지속하는 것은 스마트한 전략이 아니다. 애리애나 허핑턴의 말을 빌리자면 모두가 피로한 시대엔 잠을 잘 자는 사람이 오히려 성공할지도 모른다. 수면의 과학으로 매일 장수를 선택하는 분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차미영 < 기초과학연구원 수리 및 계산과학 연구단 CI·KAIST 전산학부 부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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