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글로벌 Edge] 日 '레이와 신드롬'의 정체
나루히토(德仁) 일왕(천황) 즉위식이 열린 지난 1일 일본 전국의 신사와 신궁에 사람들이 몰렸다. 도쿄 메이지 신궁과 미에현 이세 신궁 등 주요 신사에선 수많은 참배객이 기도하고 새 연호 레이와(令和) 도장을 받기 위해 10시간 이상 줄을 섰다고 한다. 새 왕이 즉위하고 연호가 바뀐 것을 축하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줄지어 신사를 찾은 것이다.

일본인들은 연호가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로 바뀐 것에도 온갖 의미를 부여하며 들뜬 모습이다. 레이와가 갖는 문자적 의미에 집착해 과잉 해석하려 하고 있다. 문자를 통해 희망을 갈구하는 것이 연호 문화의 특징이라고 자찬하는 이들도 있다.

헤이세이 시대에 침체한 경제

하지만 굳이 레이(令)를 ‘명령’이나 ‘질서’라는 뜻이 아니라 ‘아름다운’이라는 뜻으로 썼다고 하는 일본 정부의 해명은 안쓰러워 보인다. 레이와 연호를 새긴 온갖 상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것도 이색적이다. 신사에 모여 새 연호에 환호하는 것을 일본인은 축제라고 하지만 단순히 축제로 보기에 힘든 측면이 너무나 많다. 오히려 지금 일본인의 불안 심리를 드러내는 행동 패턴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게 심리학자들의 분석이다.

일본 언론은 이전 헤이세이 시대를 정체의 시대요, 부작위의 시대라고 비판한다. 사회의 성숙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미완의 성숙기’라고 평가하는 언론도 있다. 그러면서 레이와 시대를 새 시대라고 부른다. 그만큼 헤이세이와 레이와 시기를 구분지으면서 희망을 불어넣으려 하고 있다.

헤이세이 초기까지 세계 경제의 15%를 점했던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지금 6% 정도에 그친다. 경제적인 격차는 물론 사회적 격차도 심해졌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어 노인 인구가 급속히 늘고 전체 인구는 감소하고 있다. 이른바 ‘잃어버린 25년’의 산물이다. 임금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2012년에 출범한 아베 신조 정부가 그렇게 개혁하고 혁신하려 했지만 일본인의 불안 심리를 완전히 해소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日王에 기대는 심리 커져

일본에서 왕은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일본 헌법은 ‘천황은 헌법이 정하는 국사에 관한 행위만을 하고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갖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왕은 결코 상징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일본 재해지역과 외국을 다니며 위로의 말을 전했고 역사에 대한 반성의 말을 하기도 했다. 나름 정치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퇴위와 즉위 의식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는 것도 그렇다.

원래 일왕은 퇴위를 자의적으로 할 수 없게 돼 있다. 퇴위 의식에서 상징적 존재로서의 일본 헌법에 맞추기 위해 아베 총리가 먼저 퇴위를 선언했다. 그리고 나서 일왕의 말이 이어졌다. 즉위식에서 보이는 ‘3종의 신기(神器)’도 눈에 보이지 않게 처리했다. 철저한 정교분리가 이뤄졌다고 아베 정부는 밝혔지만 ‘눈 가리고 아웅’ 격이다.

문제는 1980년 전후 왕실에 친밀함을 느끼는 일본인은 40%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76%에 이른다는 점이다. 미래가 불안할 때 일왕에게 기대는 심리다. 어떻게 보면 미약한 경제성장이 가져다준 일본 정치 시스템의 유산일지 모른다. 경제가 호황을 누리지 못하면서 나오는 현상 중 하나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트럼프 현상’도 불안심리의 표현이었다. ‘레이와신드롬’도 이 같은 길을 걷고 있다.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