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백화점 명품관 앞에서 기다리는 시민들의 모습. 사진=뉴스1
서울 시내 한 백화점 명품관 앞에서 기다리는 시민들의 모습. 사진=뉴스1
투자 아이디어가 실생활에서 나온다는 말은 증권가에서 진리로 통합니다. 현장에서 검증된 돈의 흐름만큼 정확한 투자 지표는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여의도의 투자 대가들은 아내가 어떤 옷을 사는지, 어떤 프로그램을 보는지 등을 면밀히 관찰한다고 합니다.

최근 여의도에서 샤넬 오픈런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최소 500만원을 호가하는 샤넬 핸드백을 밤까지 새서 사는 사람들이 누구냐는 겁니다. 제로금리로 돈이 많이 풀렸다고 하지만 500만원을 ‘껌값’처럼 쓸 수 있는 소비층이 급증하는 것은 분명 주목할 만한 경제적 현상입니다.

처음에 전문가들은 코로나19에서 원인을 찾았습니다. 해외여행이 막히면서 국외에서 사던 명품족들이 국내로 몰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걸로만 현상이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현장 조사를 통해 증권업계는 결정적 원인이 부동산에 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샤넬 매장에 줄지어 서있는 상당수가 부동산으로 대박난 주부들이란 분석입니다. 최근 2~3년 사이에 부동산으로 수억원을 번 주부들이 핵심 소비층으로 등장했다는 겁니다. 이들은 외벌이 중산층이었지만 부동산으로 5~10억원을 벌어 ‘신분’이 상승했습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부동산은 여성들이 주도해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가정에서 발언권이 세진 주부들은 '내가 5억원을 벌었는데 500만원도 못쓰냐'는 말로 남편을 설득한다”고 전했습니다. 부동산값 급등을 계기로 주부들의 소비력이 대폭 증대된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주식시장에 고스란히 녹아들었습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이 57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10% 급증했습니다. 같은기간 신세계 영업이익은 962억원으로 298% 늘어났습니다. 두 종목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쏠쏠한 수익을 챙겼습니다.
서울 시내 한 백화점 명품관 앞에서 번호표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시민들의 모습. 사진=뉴스1
서울 시내 한 백화점 명품관 앞에서 번호표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시민들의 모습. 사진=뉴스1
증권가는 부동산 대박 주부들의 소비가 어디로 향할지 주시하고 있습니다. 면세점이 대표적입니다. 여행 재개를 가정할 경우 호텔신라는 2023년 영업이익 3380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면세점에 명품 소비를 위한 모든 것이 있다”며 “부동산으로 돈을 번 주부들은 벌써부터 ‘면세점 털기’를 벼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항공주도 눈여겨봐야 한다는 조언입니다. 코로나19 종식 이후엔 단순히 비행기 이용건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의 질’이 증대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으로 3억원을 번 한 직장인은 “2년 동안 해외여행을 못 갔으니 코로나19 이후 첫 해외여행은 주변국이 아닌 미국이나 유럽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수익성이 높은 장거리 노선이 많이 팔릴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대면접촉이 늘어나면 명품 화장품 판매량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소개팅, 동호회 등 각종 모임이 재개되면서 메이크업과 향수 수요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년치 미뤄뒀던 소비가 폭발하면서 역대급 실적도 기대되고 있습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수억원을 번 가정들은 연봉이 그대로여도 소비여력 자체가 커졌다고 봐야 한다”며 “집값이 우상향을 이어갈 경우 핸드백, 화장품 등 명품 브랜드들은 호황을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