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형이란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31일 재판부가 최태원 SK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자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 안이 술렁였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하라는 재판장 이원범 부장판사의 말에 최 회장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2008년 사면 복권되고 3개월 만에 저지른 일’이라는 재판부의 지적에 대해 최 회장은 “이 건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이 2010년”이라며 “이 사건 자체를 잘 모른다”고 했다.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지만 최 회장은 “다른 건 몰라도 꼭 말하고 싶은 것은 단지 그것 하나다”고 한 뒤 입을 닫았다. 법정구속과 함께 선고가 끝났음을 알리자 법정을 가득 메웠던 SK그룹 임직원들은 벌떡 일어나 최 회장이 구치소로 이동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최 회장은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최 회장은 이날 오후 2시 재판이 열리기 20분 전 일찌감치 도착했다. 변호인과 몇 마디 얘기를 나눈 후엔 두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올해부터 그룹을 대외적으로 대표하게 된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비롯해 김신배, 정만원, 김재열 부회장과 구자영 SK이노베이션 부회장, 하성민 SK텔레콤 사장, 이창규 SK네트웍스 사장 등 그룹 경영진도 긴장된 표정으로 선고를 기다렸다. 최 회장은 펀드자금 조성과 유용에 대해 유죄가 나오고 실형 선고가 나올 때까지 한 시간 내내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서서 판결문을 들었다. 법정구속으로 최 회장이 법정을 떠날 때 방청석 일부에서는 울음 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무죄 판결 후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법정을 빠져나온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심경을 묻는 취재진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더 할 말이 없다”고 짧게 답했다.

최 수석부회장까지 형제가 모두 구속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SK그룹 임직원들은 총수의 법정구속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 회장은 SK(주),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의 대표이사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SK는 판결 직후 법적인 절차를 통해 혐의 없음을 소명해 나갈 뜻임을 분명히 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성심껏 소명했으나 인정되지 않아 안타깝다”며 “판결문을 송달받는 대로 판결 취지를 검토한 뒤 변호인과 협의, 항소 등을 통해 무죄를 입증하겠다”고 말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