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3차장 검사실에서 17일 열린 정례 기자 브리핑.최재경 차장검사와 기자들 사이에 난데없는 선문답이 오갔다. 이날 최대 관심사는 검찰이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언소주)의 광고 불매운동을 형사처벌할지 여부였다. 한 기자가 "언소주는…?"이라고 말을 꺼내자 최 차장검사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언쏘주? 보드카도 아니고…"라며 농담으로 받아쳤다. 그는 "공갈죄로 처벌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날이 꾸리꾸리하다"는 엉뚱한 대답으로 비켜갔다.

최 차장검사는 다른 기자가 재차 처벌 계획에 대해 묻자 그제서야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특별수사 브리핑 문제와 관련해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어느 정도 알려야 하는지 수사공보제도 개선위원회에서 정답을 내놓을 것"이라며 "개인의 명예 등 문제가 있으니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말할 내용이 없으니 양해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마디로 피의사실공표죄가 우려된다는 얘기였다. "언소주의 행위가 다 알려져 있고 법리 적용만 하는 문제인데 이 경우에도 피의사실공표죄가 해당되느냐"는 질문에도 최 차장검사는 "다른 사건을 예로 들어 질문해달라"며 역시 대답을 피했다. 그는 "여기 (브리핑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이래도 되는건지 모르겠다"며 "전부터 해오던 것을 갑자기 중단하기 뭣해서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피의사실공표와 관련,이처럼 조심스런 분위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 투신 서거 이후 검찰 전반에서 감지되고 있다. 검찰이 피의사실을 기소 전에 흘려 노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비판이 불거져서다. 문제는 피의사실공표의 허용범위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어 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5일 열린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장검사 브리핑에서는 보험가입 운전자의 중상해 교통사고에서 피해자의 구체적인 부상정도를 묻는 질문에도 담당 부장검사가 "피의사실공표라서…"라며 답하지 않았다.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검찰의 변화 움직임은 늦긴 했지만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국민의 알권리 역시 존중돼야 한다. 검찰수사가 베일에 싸이기만 한다면 검찰의 견제받지 않는 독주가 생길 수도 있다. 법무부가 하루빨리 인권 보호와 알권리 사이에서 접점을 찾은 수사공보제도 개선책을 내놔야 하는 이유다.

임도원 사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