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데려올 디자이너 자리를 미리 만들어 둔 것입니다. 디자인 인력을 보강해 이마트 PL(private labelㆍ자체 상표) 의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야지요."

권오향 신세계 이마트 패션부문 총괄 상무(43)는 자신의 방 바로 옆 패션 디자인실에 책상 여러 개가 비어 있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달 초 정기인사에서 신세계 오너 일가를 제외하고 첫 여성 임원 자리에 오른 화제의 인물이다.

권 상무는 남성복·여성복 디자이너 각 1명만 데리고 지난 8월 이마트 자체 프리미엄 의류 브랜드 '샵 나인 오 투(#902)'를 선보여 대박을 일궈냈다.

'#902'는 현재 전국 이마트 24개 매장에 들어가 있다.

권 상무는 흔히 대형 마트에서 잘 팔리는 베이직한 스타일을 뛰어넘어 200여종에 달하는 트렌디 의류를 내놓는 파격을 시도했다.

신세계는 이 브랜드가 한 달에 1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성과를 거두자 내년까지 매장을 100개로 늘리고 디자인 인력도 8명을 한꺼번에 채용할 계획이다.

신세계는 또 권 상무의 임원 승진을 계기로 그가 이끄는 패션 디자인실을 회사 내의 '패션 소(小)기업' 수준으로 격상시켜 패션부문 상품 기획·생산·발주의 전권을 맡겼다.

정병권 신세계 홍보실 부장은 "10년 가까이 공식으로 굳은 '할인점 티셔츠 한 장=1만원'의 벽을 뛰어넘은 것이 바로 #902의 가장 큰 성과"라며 "이마트의 오랜 숙원이었던 패션 상품 고급화의 꿈을 이루게 됐다"고 평가했다.

권 상무는 덕성여대 의상학과를 나와 1986년부터 패션 디자이너 길을 걸었다.

논노,데코,한섬 등의 디자인실장을 거쳐 지난해 9월 패션을 강화하려는 이마트에 부장급으로 영입됐다.

"제가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대형 마트 자체 브랜드 제품은 봉제업체가 알아서 만들어 오는 것을 사들여 상표를 붙여 내놓는 게 일반적이었죠.팔려나가는 것도 기본 티셔츠와 면바지 정도가 고작이었고요.

하지만 저는 대형 마트에서도 트렌디한 의류를 팔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미 전국적으로 포화 상태에 이른 대형 마트에서 최근 가장 치열하게 맞붙고 있는 분야가 바로 '패션'이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다른 대형 마트와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이미 넘어서 있다.

'#902'를 한국형 SPA(제조·판매 일체형 의류)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 권 상무의 꿈이다.

제조업체와 유통업체의 기능을 하나로 묶어 원단 구매에서 봉제,물류,마케팅,판매의 전 과정을 일괄 관리한다는 얘기다.

미국의 갭(GAP)이나 스페인의 사라(ZARA)도 이 같은 SPA 브랜드에 속한다.

권 상무는 "외국의 SPA 브랜드는 패션기업이 모태가 돼 직영 유통망을 확보하는 쪽으로 발전해 갔다"며 "하지만 이마트는 이미 100개가 넘는 유통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역으로 내부에 직접 의류를 기획 발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만 하면 사업하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