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제2차5개년계획부터 마이크로 공장건설계획이 없어진것은 그것이
필요없어서가 아니었다. 해마다 상공부가 미리 산업정책을 만들어 전기
시멘트 비료 석유화학제품의 부족을 해소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후진국은 그렇지가 못하다.
내가 작년 가을에 유엔개발계획(UNDP)주선으로 자메이카에 갔을때 그
나라가 만든 5개년계획에는 공업을 발전시키겠다는 말은 무성했지만 구체적
공장건설계획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메이카에서 할수있는 공장건설계
획을 작성,정부가 지원해서 수입하고 있는 물품을 자메이카에서 만들어야
20%에 이르는 실업률을 해소하고 경제가 발전할 것이다. 물자를 생산
한만큼이 소득이지 돈은 소득이 아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아직도 공장건설계획을 작성하지 못했고 공장건설이 추진되고 있지
않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수 없다.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을 한국은행이 작성했다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함구령을 내린 탓으로 내가 수출입은행장으로 취임해서 증거문서를 찾기
시작할때까지는 발설한 사람도 없었고 한국은행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듯
했다.

5개년계획을 최고회의에 제출한지 약 1주일후에 최고회의에서 전화가와
받아보니 백용찬씨(농협중앙회이사역임)였다. "박조사역 오랜만입니다.
한국은행이 작성한 5개년계획 내용이 잘되어 있습니다. 내가 맡아 보완
작업을 하고 있는데 다른 분야는 다 이해하겠지만 재정분야를 왜 그렇게
했는지 알수 없으니 재정계획작업을 했던분을 최고회의에 파견해 주셨으면
합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재정계획을 담당했던 이경식씨(현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가
최고회의로 파견되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이경식씨는 경제기획원으로
직장을 옮기게 된것이다. 최고회의에서 재정계획수치를 다른 산업분야
추세와 달리 높여 잡은데는 네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공무원봉급을 3배로 인상해 재정지출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나는
4.19혁명의 직접적 도화선이 부정선거이긴 하나, 근본적인 원인은 자유당
정권의 부패에 대한 국민불만 때문이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 부패의 근원은
공무원의 봉급이 너무적어 생활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 "급행료"
를 받게되고 허가사항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데 있었다.

그래서 관청에 가면 되는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는 말이 돌게 되었다.

고등교육을 받은 공무원이 국가를 위해 "급행료"없이 봉사하고 싶어도
당장 집에서 끼니 걱정을 하고있으니 어찌 공무를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급행료"가 "뇌물"이 되고 "뇌물"은 공무원이 대기업
간부들과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정당한 구실이 되었기에 "백년
하청"이라고 생각했다.

공무원이 뇌물에 흔들리지 않도록 일본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시켜주면 부패는 없어지고 국민에게 존경받는 공무원상이 정립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 봉급수준이 대기업에 못미치면 부패행정을 근절시킬 방법은
없다는 소신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국사는 공무원이 관장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장관연봉이 미화로 25만달러라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대신 이 나라에선 부정을 절대 용납하지 않고 있다.

재정지출을 늘린 두번째 이유는 벼수매가를 인상하기 위해서였다. 물가는
올라만 가는데 쌀값은 물가안정을 이유로 인상해주지 않아 농민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농민 소득을 물가가 오른만큼 보상해주기
위해 벼수매값 인상과 계절 쌀값변동을 조절하는데 필요한 재정지출자금을
증액계상했다.

셋째는 미국과 비교할때 한국의 도로,특히 서울을 포함한 각 도시의
도로가 너무나 형편없어 도로확장과 수리비용을 대폭적으로 늘려 계상했던
것이다.

넷째는 재정지출수요가 이같이 증가했기 때문에 세수도 늘리도록해 수지
균형 계획을 제시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