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국제결혼으로 '반쪽' 찾았는데…어느 날, 아내가 사라졌다
서울 강남에 사는 디자이너 정모씨(32). 독신주의를 내세우던 그는 지난해 10월 지인의 소개로 만난 우즈베키스탄 여성 A씨(25)와 결혼했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혼인신고를 했다. 지난 1월부터 강남 부모님 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아이도 생겼다. 그러나 신혼의 달콤함은 도를 넘은 아내의 선물 요구로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월 1000만원 넘는 고소득 전문직이라 처음에는 아내의 요구를 다 들어줬다. 아내가 선물을 요구하는 주기가 2~3일 단위로 짧아지면서 다툼이 잦아졌다. 지난 5월에는 옆에서 자는 줄 알았던 아내가 누운 채 스마트폰으로 고향의 남자친구와 “젊은 남자랑 결혼하니까 용돈도 잘 주지 않는다. 여행을 가겠다고 하면 그냥 보내주지도 않고 꼬치꼬치 따진다”는 내용을 주고받았다.

정씨는 아내와 크게 다퉜고, 아내는 그길로 집을 나갔다. 이틀 후 서울의 한 쉼터로부터 연락을 받고 정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달려갔다. 정씨는 “아내가 갑자기 어머니의 팔을 물어뜯어 난리가 났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정씨는 이혼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A씨도 이혼의 책임이 정씨에게 있다며 맞소송을 냈다. 정씨는 “어디서 조언을 들었는지 위자료를 많이 받아내려 폭행당했다는 등 없던 일까지 꾸며낸다”며 “그냥 이혼하면 체류 근거가 없어져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게 돼 이혼의 책임이 남편한테 있다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고 씁쓸해 했다.

외국 여성과 국제결혼한 남성들의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 쉰 가깝도록 짝을 못 찾은 ‘시골 노총각’이 주역이던 국제결혼 남성이 잘 나가는 전문직까지 확산되면서 지능적 계획 이혼이 늘고 있다. 이혼 사유를 남편에게 떠넘겨 거액의 이혼 합의금을 뜯어내고, 한국 체류 기간을 연장하려는 행각들이다. 국제결혼 초기 술주정하는 남편에게 폭행당한 어린 아내들이 ‘생존’을 위해 이혼을 선택했다면 최근엔 작은 다툼에도 한몫 챙기고 갈라서는 ‘할리우드식’ 이혼이 성행하고 있다.

◆돈 노린 위장 결혼…피해 사례 하루 수십건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국제결혼을 통한 결혼이민자는 28만명을 넘고 있다. 매년 외국인 아내와 결혼했다 이혼한 부부는 8000쌍을 넘나든다는 게 통계청의 집계다.

국제결혼으로 피해를 본 남성들은 “다문화 가정 파괴 요인으로 문화적 차이도 있지만 이혼으로 잃을 게 없다는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다문화 가정의 이혼 특징은 월 500만원이 넘는 중산층 가정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 외국인 여성과 결혼한 인천 부개동에 사는 안모씨(46)는 26세의 어린 아내를 극진히 배려했다. 굴삭기 기사로 한 달 500만~600만원을 벌어 생활이 넉넉했다. 그런데 아내는 한국 생활에 싫증을 내더니 우즈베키스탄의 남자친구에게 계속 국제전화를 걸었다. “야 스쿠촤유 파 치베. 야 치바 류블류.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된 안씨는 천불이 났다. 급기야 아내는 커터칼로 손목을 긋기까지 했다. ‘왜 집과 차를 사주지 않느냐’는 게 이유였다. 결국 안씨는 아내와 이혼하며 수천만원의 위자료를 주고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위장 결혼의 피해는 한국인 남편과 그 가족에게 고스란히 남는다. 신혼의 단꿈이 깨진 것도 모자라 결혼하는 데 들어간 수천만원의 금전적 손해까지 감당해야 한다. 안재성 국제결혼 피해센터 대표의 휴대폰에서 ‘베(베트남)’라는 글자를 검색하면 510명의 이름이 뜬다. 사기 결혼을 당한 뒤 안 대표에게 상담한 사람들이다. 피해센터 인터넷 카페에는 하루에도 수십건의 피해 사례가 올라오고 직접 찾아오는 피해자만도 하루 평균 7~8명이다.

◆브로커 가세…‘책임 남편에 떠넘기기’ 강의도

전문가들은 이혼을 염두에 둔 외국 여성들은 결혼생활보다 국내 돈벌이에 관심을 두고 한국행을 택한다고 지적했다. 혼인 신고를 마치고 결혼이민 비자(F-6)를 받으면 초기 90일 동안 체류할 수 있고 보통 1년 단위로 비자를 갱신한다. 2년이 지나면 귀화하거나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물론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했을 때 얘기다.

최근에는 ‘기획이혼 브로커’가 다문화 가정의 이혼을 부추기고 있다. 브로커들은 이주여성에게 ‘가정폭력 당하는 방법’을 상세히 알려준다. 이혼할 때 남편에게 책임을 떠넘겨야 한국에서 계속 지낼 수 있어서다.

위자료를 받으면 일부를 수수료로 챙긴다. 수수료를 노리는 브로커와 비자 연장과 영주권 취득 등으로 한국에서 독립하고 싶은 이주여성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기획이혼’이 기승을 부리는 셈이다. 비자 기한이 넘더라도 이혼 소송 기간 중에는 한국에 머무를 수 있다. 이혼 전에 결혼 피해자로 인정받으면 내부적으로 F-6(3) 비자로 분류돼 체류 자격을 얻어 합법 체류 기간에는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 나중에 영주권이나 귀화 자격을 취득할 수도 있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관계자는 “결혼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여성들은 체류 자격을 얻기 위해 소송까지 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도 “국제결혼을 한 부부 중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쪽은 남성이 많지만 최근에는 여성들의 이혼소송 제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이혼 부추겨” vs “이혼자 지원 없어”

가출했다가 이혼을 도와주겠다는 말에 속아 수백만원을 날리는 이주여성도 속출하고 있다.

한 이주여성인권단체 관계자는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체류 연장’부터 ‘이혼소송 지원’까지 도와주겠다며 10만원부터 300만원까지 챙기는 브로커들이 있다”고 말했다. 김형하 국제결혼피해센터 조사국장은 “법무사 행정사 등과 결탁한 브로커들은 이주여성의 이혼 소송을 대리해 큰 돈을 챙긴다”며 “일부 이주여성 쉼터나 상담소도 정부 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해 가정 화합보다 이혼을 유도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쉼터가 이혼자 숫자에 따라 지원금을 더 받는 것은 잘못 전해진 말”이라며 “쉼터 시설이 10명 미만이냐, 10명 이상이냐에 따라 시설 종사자의 인건비 지원금이 달라질 뿐 여러 명을 보호하고 있다고 해서 돈을 더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지훈/박상익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