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경매사 시절의 조지나 힐튼.  크리스티 홍콩 제공
신입 경매사 시절의 조지나 힐튼. 크리스티 홍콩 제공
지난달 30일 크리스티 경매가 한창인 홍콩 컨벤션센터 경매장. 니콜라스 파티의 ‘푸른 일몰’이 화면에 떠오르자 장내가 순간 조용해졌다. 지금 세계 미술시장에서 가장 인기 높은 작가의 대표작으로, 이번 경매의 ‘간판’이었다. 경매가 시작되자마자 세계적인 큰손 컬렉터들과 대리인들이 앞다퉈 손을 들고 호가를 외쳤다.

그 중심에 32세의 여성 경매사 조지나 힐튼이 있었다. 그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가격과 대리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경매장을 휘어잡았다. 키 180㎝를 훌쩍 넘기는 힐튼이 긴 팔을 우아하게 휘둘러 이곳저곳을 가리키는 모습이 마치 현대무용 공연의 한 장면 같았다.

어느새 힐튼의 등 너머로 작가의 최고가 기록을 넘어섰다는 뜻의 ‘옥션 레코드(Auction Record)’가 떠올랐다. “4000만홍콩달러, 새라, 에이다, 레베카, 4200만 불러보세요, 4300만, 재키, 당신이 가져가게 될 것 같군요, 더 없습니까, 낙찰됐습니다!”
조지나 힐튼이 지난달 30일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이브닝 경매에서 니콜라스 파티의 ‘푸른 일몰’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크리스티 홍콩 제공
조지나 힐튼이 지난달 30일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이브닝 경매에서 니콜라스 파티의 ‘푸른 일몰’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크리스티 홍콩 제공
수수료를 포함한 가격은 무려 5205만홍콩달러(약 86억6100만원). 기록적인 가격에 판매가 성사되자 경매장에 박수가 울려 퍼졌다. 경매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힐튼에게 보내는 경의의 박수이기도 했다. 2017년 최연소 크리스티 경매사가 된 지 6년여 만에 미술시장의 ‘슈퍼스타’가 된 힐튼을 지난달 29일 홍콩에서 만났다.
최연소 경매사, 5년 만에 최고의 반열에
세계 양대 경매회사 중 한 곳인 크리스티는 2~3년에 한 번 ‘X Factor’라는 일종의 공개 오디션을 열고 경매사를 뽑는다. 크리스티 직원이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지만, 경매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두세 명에 불과하다. 경쟁률은 10 대 1에서 20 대 1을 넘나든다.

힐튼은 26세 때 이 오디션을 통과해 2017년 크리스티의 최연소 경매사가 됐다. 서구 미술시장에서 ‘경매사는 남자가 하는 일’이란 통념이 강했던 시절. “힐튼이 성별·나이 형평성 정책 덕분에 뽑혔다”고 수군대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힐튼은 그해 9명의 남성 경매사를 제치고 미국 경매사협회의 ‘올해의 신입 경매사’로 선정되며 능력을 증명했다.

“그 무렵 크리스티 최고경영자(CEO)인 기욤 세루티가 ‘작품이 50점 이상 나오는 대형 경매는 무조건 남성 경매사와 여성 경매사가 반반씩 진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덕분에 여성 경매사 채용이 크게 늘었죠. 막상 뽑아놓고 보니 여성 경매사들도 남성 경매사 못지않게 잘한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남성의 목소리가 낮고 굵으니 경매를 더 쉽게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저는 언제 침묵하고 언제 말하는지가 경매 장악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매사는 성별이 중요한 게 아니란 거죠.”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그는 지난달 17일 마침내 ‘세계 경매시장의 꽃’인 크리스티 뉴욕 이브닝 경매를 처음으로 진행했다. 세계 최고의 경매사 반열에 올랐다는 뜻이다. 하지만 힐튼은 “아직도 경매 시작 두 시간 전부터 손이 벌벌 떨린다”고 했다. “수없이 많은 경매를 겪었지만 아직도 긴장을 많이 해요. 하지만 아드레날린도 함께 나와요. 그 덕분에 두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경매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컬렉터와 응찰자, 동료들, 수백만 명의 온라인 시청자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지칠 틈이 없습니다.”
“경매사, 언제 침묵하고 언제 말하는지가 관건”
수천억원씩 팔아치우는 '경매 슈퍼스타'…"완판 비결은 침묵의 타이밍"
평소 경매사에게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경매가 잘 끝나면 인센티브를 받나요?” 힐튼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많이 물어보시는데, 아닙니다. 만약 받았다면 저는 지금 엄청난 부자가 됐겠죠. 그래도 불만은 없습니다. 다른 직원들도 경매를 함께 준비하면서 경매사 못지않게 고생하니까요. 크리스티에서는 경매사들 모두 본업이 있습니다. 저는 서양 고전 미술 분야를 맡고 있고요. 추가 수당조차 안 받습니다. 하지만 경매사라는 명예, 일하는 재미, 경매가 잘 끝난 뒤 팀원들이 웃으며 안아주는 걸로 충분히 만족합니다.”

힐튼이 “인센티브를 얼마 받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 건, 그만큼 그가 물건을 잘 팔기 때문이다. 비인기 작품도 힐튼이 팔면 인기 작품처럼 경합이 붙는다는 게 동료들의 얘기다. 그는 “관심이 적은 작품도 경매의 간판 작품처럼 열정적으로 소개하면 작품을 살 생각이 없었던 고객도 ‘한번 사볼까’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고 말했다. “그 후 완급 조절을 잘 하면서 고객들에게 시간을 좀 주면, 어느 순간 ‘온라인에서 입찰이 들어왔다’는 메시지가 뜹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티를 내면 안 되니 간신히 참습니다. 하하.”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공부와 연습이 필요하다. “중요한 건 오직 연습, 연습, 연습”이라는 게 힐튼의 얘기다. 장 미셸 바스키아의 최전성기인 1982년 작품이 다른 해 작품들과 어떻게 다른지, 경매에 나온 핸드백에 박힌 다이아몬드가 어떤 종류인지 등 작품이 왜 가치 있는지를 철저히 숙지한 뒤 이를 요약하고, 매우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는 “작품의 매력을 잘 전하는 건 크리스티에 작품을 출품한 위탁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의미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힐튼은 “아직도 현역 경매사로 활동하는 프랑수아 쿠리엘 유럽지역 사장(74)처럼 평생 경매사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쿠리엘을 만난 적이 있는데, ‘50년 넘게 경매사를 했지만 아직도 배울 게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처럼 평생 공부하며 경매를 이끌고 싶어요. 경매사는 정말 재밌는 직업이거든요.”

홍콩=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