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에선 중앙은행의 역할을 둘러싸고 격렬한 공박이 오갔다. 논쟁의 촉발은 상반된 시각에서 쓰인 두 권의 책이었다. 하나는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쓴 <21세기 통화정책>이었고 다른 한 권은 유명 경제평론가 에드워드 챈슬러의 <시간의 가격>이다. 버냉키는 Fed의 저금리 정책이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했지만 챈슬러는 저금리가 온갖 폐단을 불러왔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재테크 서적은 잘나가는데…정통 경제책은 먼지만 '폴폴'
한국에선 이런 논박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문화적 차이 등 여러 원인이 있지만 경제서 출간이 활발하지 않은 점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경제지식을 진지하게 탐독하고 의견을 교환할 토대가 없다는 얘기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불거진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은 정통 경제서의 자리를 더욱 줄였다. 업계 관계자는 “출판사들이 돈을 벌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독자들의 ‘포모’ 공포를 이용해 재테크 도서 발간에 사활을 걸었다”며 “사회적 논의의 깊이가 얕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14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경제일반서와 재테크·금융서의 판매 점유율은 각각 24.1%와 75.9%를 차지했다. 경제일반과 재테크·금융으로 분류된 책의 총판매량에서 각 분류 항목이 차지한 비율이다. 2019년 각각 45.7%와 54.3%였던 것에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재테크서는 2020년에만 전년보다 판매량이 93.5% 늘었다. 2021년에도 판매 증가율이 34.6%에 달했다. 반면 경제일반서는 2020년에 판매량이 2.3% 줄었고, 2021년엔 16.4% 늘어나는 데 그쳤다.

경제서를 찾는 독자가 줄면서 출간도 위축되고 있다. 올해 국내에서 출간된 경제서는 <세금의 흑역사>(세종서적), <셧다운>(아카넷), <새뮤얼슨 vs 프리드먼>(부키), <노이즈>(김영사), <타잔경제학>(한국경제신문), <창조적 파괴의 힘>(에코리브로) 등으로 그리 많지 않다.

박재환 에코리브로 대표는 “잘 안 팔리다 보니 출간을 꺼리는 것”이라며 “어느 정도 사명감 없이는 정통 경제서를 펴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소연 세종서적 편집주간은 “경제·경영서 안에서도 지금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만 잘 팔리는 상황”이라며 “정통 경제서는 물론이고 일하는 방법에 관한 책 같은 것도 요즘엔 관심을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학자보다 유튜버에 귀를 기울이는 시대가 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요즘 사람들은 어렵고 재미없는 경제학자들의 이야기보다 유튜브를 통해 지식을 얻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많은 유튜브 내용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자에 치우쳐 있다 보니 우려스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국내 학자들도 경제서를 많이 내면 좋겠지만 시장이 작아 책을 낼 인센티브가 작다”고 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