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컬렉션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관람객으로 가득 차 있다. /성수영 기자
이건희컬렉션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관람객으로 가득 차 있다. /성수영 기자
‘여기부터 입장까지 네 시간 이상 걸립니다.’

9일 서울 삼청동 화랑가에는 롯데월드에서나 볼 수 있던 대기 표지판이 서 있었다. 표지판 뒤로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가 보니 국립현대미술관 가장 안쪽 1전시실로 이어졌다. 다음달 6일 폐막하는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 명작’을 찾은 관람객들이 만든 행렬이었다.

지난주 이 전시의 하루평균 관람객은 3000명에 달했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른 동시 관람 인원 한도(전시장 내 100명)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꽉 채운 셈이다. 윤승연 국립현대미술관 홍보관은 “사전 예약 없이 현장에서 표를 끊고 입장할 수 있도록 방침을 바꾼 지난달 12일부터 이런 ‘오픈런’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네 시간 기다렸지만 만족”

이건희컬렉션 천경자의 ‘노오란 산책길’(1983).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건희컬렉션 천경자의 ‘노오란 산책길’(1983).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건희컬렉션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건 지난해 7월이다. 이중섭 김환기 등 ‘국민 화가’들의 대표작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소식에 평소 미술에 크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국립현대미술관 문을 두드렸다.

관람은 하늘에서 별 따기였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방역조치가 강화되면서 하루 240명만 온라인 예약을 받았기 때문이다. ‘광클(미치도록 빠르게 클릭)’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예약에 성공했다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무료 전시인데도 암표가 나돌았다.

미술관 앞에 줄이 늘어서기 시작한 건 지난달 12일 방역조치 완화에 따라 현장 발권이 가능해지면서다. 윤 홍보관은 “평일 오전 10시에 미술관 문을 여는데 두 시간 전부터 줄이 늘어선다”며 “주차장이 꽉 차 직원들도 차를 못 댈 정도”라고 말했다. 이날 만난 한 관람객은 “새벽에 전남 여수에서 올라와 네 시간 기다려 전시를 봤는데, 오래 기다렸지만 만족한다”며 “천경자의 ‘노오란 산책길’(사진) 등 봄 냄새 물씬 풍기는 작품이 인기가 많았다”고 했다.

줄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지난달 28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작한 또 다른 이건희컬렉션과 시너지 효과가 나면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건희컬렉션 중 고미술과 지방 미술관 기증품, 모네의 ‘수련’ 등을 모아 ‘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시를 열고 있다. 이 전시 역시 2주도 안 돼 2만 명(9일 기준) 넘게 관람할 정도로 인기다. 이재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선 한국 근현대 거장의 작품을, 박물관에선 고미술품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어 두 전시를 ‘세트’로 관람하는 관람객이 많다”고 했다.

삼청동 갤러리들도 ‘즐거운 비명’

‘이건희 특수’는 삼청동 화랑가 전체가 누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관람을 마친 뒤 인근 갤러리로 ‘미술 나들이’를 하는 이들이 늘어서다.
학고재갤러리에 전시 중인 포 킴의 ‘발리의 기억’(2003). /학고재갤러리 제공
학고재갤러리에 전시 중인 포 킴의 ‘발리의 기억’(2003). /학고재갤러리 제공
미국 뉴욕의 주류 예술계에서 60여년간 활동한 포 킴(본명 김보현·1917~2014)의 그림을 내건 학고재갤러리가 대표적이다. 학고재 관계자는 “전시장이 전례 없이 붐비고 방문이 구매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전시는 6월 12일까지.

스위스 현대미술가 우고 론디노네의 강렬한 형광색 조형물을 내놓은 국제갤러리 전시, 김지원 작가(61)가 그린 맨드라미와 레몬 등 화사한 색조의 그림을 펼친 PKM갤러리의 ‘레몬’도 관람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전시는 각각 오는 15일, 26일까지 열린다.

10일 청와대가 일반에 공개되면 갤러리 관람객은 한층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춘추문 앞에 자리잡은 중견 화랑 공근혜갤러리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이벤트를 준비했다. 이곳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태 킴 작가(36)가 청와대 개방을 기념해 만든 작품을 개방일(10일)부터 1주일 동안 전시하기로 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