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고 론디노네 - 수도+수도승 시리즈: 우주의 공명이 느껴지는가 
국제갤러리 K3
우고 론디노네 - 수도+수도승 시리즈: 우주의 공명이 느껴지는가 국제갤러리 K3
미술은 어렵고 복잡하다고 생각하는 당신께. 짧은 봄, 생을 다해가는 거리의 꽃잎들보다 더 화려한 이번주 전시들을 소개합니다. 조금만 알고 가면 미술 작품은 더없이 가깝게 느껴집니다. 무심해 보였던 현대미술도 커다란 감동의 씨앗이 될 수 있죠. 주말의 미술관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지금, 그림 만나러 갑니다.

‘궁극적인 행복의 열쇠는 결국 나의 일상 한 모퉁이에 있다.’

지난 8일 개막한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展)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일상을 보는 낯선 시선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열쇠라는 것이죠. 나란히 한국에서 봄 전시회를 연 세계적인 작가들 모두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특별한(extraordinary)’ 것도 결국은 ‘일상적인(ordinary)’ 것에서 왔다는 걸 말하려는 듯 자신의 작품을 통해 평범했던 지난날, 무심코 지나쳤던 돌과 바위, 매일 만지는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돌덩이가 된 수녀와 수도승
스위스 출신 작가 우고 론디노네는 ‘돌의 잠재력’에 집중해온 사람입니다. 미국 뉴욕 록펠러센터 광장부터 네바다 산맥까지 성인 키를 훌쩍 넘기는 크기의 청석 조각 작품을 세우기도 했죠. 너무 흔한 자연물인 돌에서 그는 ‘아름다움과 에너지, 구조적 특징, 표면의 질감, 그리고 시간을 모으고 응축하는 능력’을 찾아냈습니다.

거대한 돌덩이에 작은 돌을 얹어 우직한 인간의 형상을 만들고 그 위에 강렬한 색상을 얹어냅니다. 이번 작품들은 석회암 모형 작품을 확대해 청동 주물로 다시 제작했는데, 거친 표면을 그대로 살려 돌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시멘트로 바닥과 벽을 모두 칠한 전시장에서 돌덩이들 사이를 느릿느릿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대자연 속에서 숨쉬는 듯한 착각마저 듭니다. 사진 찍기 바쁜 사람들 사이에서 그저 전시장 바닥에 우두커니 서 있거나 바닥에 앉아보세요. 그 사이를 채우는 타인을 함께 바라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전시를 보고 나면, 문밖의 돌이 돌처럼 보이지 않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전시는 5월 15일까지.
82세 거장, 아이폰에서도 영감을?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 참나무: 유리 선반 위 그 물잔, 참나무로 보이는가
한가람미술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 참나무: 유리 선반 위 그 물잔, 참나무로 보이는가 한가람미술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마르셀 뒤샹의 ‘샘’과 함께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죠. 1973년 유리잔에 물을 붓고 ‘참나무’라 이름 붙이며 개념미술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그 참나무가 지금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아시아에선 최초로 선보이는데 고개를 갸우뚱할 관람객을 위해 참나무 작품 앞엔 긴 설명 대신 작가 인터뷰 내용이 있습니다. 작가는 “나는 물잔의 본질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잘 자란 참나무로 바꿨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개념미술 작가만이 할 수 있는 대답. 내 눈에 보이는 뭔가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꾸는 작업. 다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예술의 본질과 예술가란 누구인가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작품인 건 분명하니까요.

크레이그 마틴의 회화 작품 속엔 일상의 소품이 자주 등장합니다. 스마트폰과 테니스공, 헤드셋과 노트북 등입니다. 3차원을 2차원으로 변형시키고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색을 절묘하게 배치하는 그의 그림들. 때로 이미지를 과감하게 잘라내고 거대하게 키워내 ‘매일 흔히 보던 것’들을 낯설게 보이도록 했습니다. 전시는 8월 28일까지.
‘빅 이즈’ 작품은 작은 회화서 탄생
로버트 테리언 - 녹색 접이식 탁자와 의자(2008): 세 살 때 내 모습이 떠오르는가
가나아트센터
로버트 테리언 - 녹색 접이식 탁자와 의자(2008): 세 살 때 내 모습이 떠오르는가 가나아트센터
미국 현대미술가 로버트 테리언은 ‘슈퍼 사이즈 작품’으로 조각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지만 이번 전시에서만큼은 작은 것들에 주목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3년 전 작고 후 첫 전시회를 연 로버트테리언재단은 그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일생의 작품들을 서울로 옮겨왔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에서 비롯된 주제들이 대부분입니다. 익살스럽고 흔한 사물을 예술의 범주로 끌어올린 작품이 많습니다. 그의 대형 조각들은 사실 손바닥만 한 폴라로이드 사진 작업에서 시작됐습니다. 드로잉과 판화는 종이 위에 그려졌지만 때로 구기고 접어내 마치 3차원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전시에 간다면 버려진 쟁반과 플라스틱 원판을 레코드판처럼 만들어 카트에 담은 작품을 찾아보세요. 원판마다 서로 전혀 다른 이미지들을 실크스크린으로 표현했는데, 그 안에는 좋아하던 소설가의 캐릭터(JOYCE)와 할머니가 손으로 썼던 무화과잼 레시피, 도덜드 덕의 부리 등 사랑스러운 것들로 가득합니다.

테리언의 작품엔 모두 제목이 없습니다. 그의 작품을 본 사람들이 각자의 제목을 달아주길 바랐던 모양입니다. 전시는 5월 5일까지.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