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미 가득한 무대…처용가·그리스신화 등 삽입
제 발로 용궁 찾아간 토끼의 운명은?…국립창극단 신작 '귀토'
"하늘도 싫고 땅도 싫소. 삼재팔란 그만두고 수궁 찾아 갈라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하나인 '수궁가'가 기발한 이야기의 창극으로 재탄생했다.

한마디로 '수궁가' 이후의 새로운 이야기로 꾸민 스핀오프(spin-off) 무대다.

지난 2일 국립극단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한 국립창극단 신작 '귀토-토끼의 팔란'에서는 육지에 간을 두고 왔다는 꾀를 내어 수궁에서 살아 돌아온 아빠 토끼(토부·兎父)의 이야기에 이어 아들 '토자'(兎子)의 모험 이야기가 펼쳐졌다.

수궁에서 돌아온 아빠 토끼는 가족과 상봉의 기쁨도 잠시, 독수리에게 잡혀가고, 엄마 토끼(토모·兎母)는 포수에게 목숨을 잃는다.

천애 고아가 된 토자는 환란만 가득한 육지를 떠나 미지의 세계인 수궁을 제 발로 찾아 나선다.

마침내 당도한 수궁. 그곳은 과연 그가 꿈꾸던 유토피아였을까.

제 발로 용궁 찾아간 토끼의 운명은?…국립창극단 신작 '귀토'
'귀토'의 무대 현장은 소리꾼들의 익살스러운 연기와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흥겨운 소리, 때론 구슬프고 때론 신명 나는 연주가 조화를 이룬 공연이었다.

토자 역의 김준수는 특유의 노련한 소리와 연기로 공연을 이끌었고, 자라 역의 유태평양은 익살스러운 연기로 관객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여기에 토자의 여자 친구인 토녀(兎女) 역의 민은경은 김준수와의 훌륭한 합으로 공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원전에는 등장하지 않은 다양한 동물들도 눈길을 끌었다.

용왕을 살리고 싶지 않은 병마사 주꾸미, 형 집행관 전기뱀장어, 검은색 부채 날개를 단 독수리 등을 연기한 소리꾼들은 각 동물의 특징을 살려 연기하며 극의 완성도를 높이고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제 발로 용궁 찾아간 토끼의 운명은?…국립창극단 신작 '귀토'
극 중간중간 삽입한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남생이와 눈이 맞은 자라 아내의 이야기는 처용가에서 따왔고, 육지 동물들의 왕을 뽑는 대목에서는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리는 '호가호위'(狐假虎威)가 떠오른다.

뱀에 물려 죽은 에우리디케를 되찾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간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다룬 그리스신화도 삽입했다.

음악은 진양조부터 중모리·자진모리·엇모리·휘모리 등 다양한 장단으로 새롭게 탄생한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 때론 슬프게, 때론 신명 나게 관객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15인조 연주단은 가야금·거문고·아쟁·해금·피리·대금 등 국악기별 소리 특성을 이용한 음향 효과와 다채로운 연주로 흥겨움과 극적 재미를 더했다.

제 발로 용궁 찾아간 토끼의 운명은?…국립창극단 신작 '귀토'
리모델링한 해오름극장 시범운영 기간에 오른 첫 작품인 '귀토'는 무대도 볼거리였다.

각목 1천500여 개를 촘촘히 이어 붙여 무대 전체를 경사진 언덕으로 만들었고, 무대 바닥에는 8x8m의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을 설치해 다양한 공간을 영상으로 구현했다.

또 새로 선보인 승강무대가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육지와 수궁 등을 표현했다.

아울러 명무 공옥진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안무는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각양각색 동물들의 모습을 간단한 소품과 단순하면서도 특징적인 안무로 표현하며 관객을 웃음 짓게 했다.

원로 소리꾼 윤충일 명창이 9살 소리꾼 최슬아와 함께 선사하는 정통 '수궁가'도 귀를 즐겁게 했다.

'귀토'는 거북과 토끼(龜兎)를 뜻하는 동시에 '살던 땅으로 돌아온다'(歸土)는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다.

작품은 토끼가 겪는 육지와 바다에서의 온갖 고난과 재앙에 주목하며, 결국 삶은 어디서나 별반 차이가 없고,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연은 오는 6일까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