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향기] "바느질 가르쳐준 할머니 덕분에 디자이너로 성장…슈트는 특별한 날 입는다고?…캐주얼함 선보일 것"
“내가 할머니의 손자로 태어난 건 행운이었다.”

정장 브랜드 볼리올리의 첫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인 다비드 마렐로는 할머니 얘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우리 할머니는 아스티에서 가장 유명한 재단사였다”고 했다. 아스티는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소도시다. 그는 어린 시절 아스티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공방 커튼 뒤에서 할머니가 손님과 대화하는 모습을 구경하곤 했다. 손님이 없을 때 할머니는 바느질하는 법, 천을 다리는 법, 시침질 방법 등을 가르쳐줬다. 5살 때부터 그는 천으로 동물 인형을 만들며 놀았다. 그는 지금도 천을 만지며 하루를 보내는 것은 운명 같다고 했다. 무대만 아스티 시골마을에서 대도시 밀라노로 바뀌었을 뿐.

마렐로는 작년 볼리올리에 영입됐다. 그전에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에 4년, 구찌에 9년 동안 몸담았다. 구찌에서는 남성복을 총괄했다. 예부터 남성들에게 슈트는 권력의 상징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완벽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모습이 부와 힘을 암시한다는 얘기였다. 마렐로는 “전통적인 남성 슈트도 멋있지만 자연스럽고 편안한 슈트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마침 볼리올리는 젊은 감각을 가진 CD를 찾고 있었다. 양쪽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볼리올리는 원래 중년 남성들이 주로 입는 브랜드였다. 작년 마렐로 영입을 계기로 젊은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착용감이 편안한 슈트를 일상생활에도, 공식행사에서도 입을 수 있는 디자인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마렐로는 “결혼식이나 파티 등 특별한 날에만 입는 슈트가 아니라 서점에 갈 때, 친구를 만날 때도 입을 수 있는 슈트가 볼리올리”라고 설명했다. 검정, 남색, 회색 위주인 기존 남성 정장에 비해 볼리올리 옷은 낙엽색, 짙은 초록색 등도 많다. 청바지나 운동화 등과도 캐주얼하게 매치할 수 있다. 마렐로는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했던 기억을 디자인으로 녹여내고 있다”며 “예스러우면서도 편안한 인상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